매일신문

막과 막사이-저격 위기

연기자가 총맞아 죽을 뻔한 희한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A씨. "그것은 지난 93년 4월 대통령이 대구에 왔을 때였죠"

대구문예회관 본관에 당시 김영삼대통령이 시정보고를 듣기 위해 방문했다. 본관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 대극장에서는 대구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한 연극 '시민 조갑출'의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대통령이 왔기에 낮 연습중에는 밖에 나가서는 안된다는 금족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깜빡한 A씨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에 나가 계단을 어슬렁거렸다. "저도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M16이 들려 있었다. 소품인 고무총. 그러나 저격수들이 멀리서 볼 때는 진짜 총과 구별 되지 않았다.

옥상에 포진해 있던 저격수들의 총구가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일촉 즉발의 위기. 그러나 A씨의 행동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긴 한 저격수의 연락으로 사람들이 달려왔다.

총구가 그의 가슴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알 길 없는 A씨는 애꿎은 담배만 뻐끔뻐끔 피울 뿐이었다. 정작 간담이 써늘했던 것은 경호팀.

'시민 조갑출'은 MBC 뉴스데스크 시간에 뛰어든 정신이상자의 '내 귀에 도청장치가 돼 있다' 사건을 연극화한 것. 광주항쟁 장면 때문에 M16이 소품으로 필요했다만약 총이 발사됐다면 '내 귀에...' 이상의 파문을 일으켰을 해프닝. 대통령이 본관 안에 있어서 다행이었지 현관 쯤에만 있었더라도 재고의 여지가 없었을 상황이었다.

"죽어도 할 말이 없었죠"라며 태연히 말하는 A씨가 오히려 가관이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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