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제3의 사나이들

영화는 시작 하자마자 검은 화면에 흰 선을 막 튕긴다. 거문고를 닮은 현악기 치터(Zither)의 강렬한 선율이 현을 쥐어 뜯는 피치카토 수법으로 깔리면서 '해리 라임의 테마'곡이 그 어떤 격렬한 한판 승부를 예견케 하고 전율과 불안이 절로 화면 가득 고인다. 지난 49년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흑백영화 '제3의 사나이'의 도입부다. 2차대전이 끝나고 폐허나 다름없는 오스트리아의 빈이 무대. 만년 노벨상 후보였던 영국의 문호 그레이엄 그린 원작을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경(卿.Sir)의 칭호를 받았던 명감독 캐럴 리드가 메가폰을 잡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명작이다. 친구의 자동차 사고를 둘러싸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함. 러닝타임 100분에 70분이 지나서야 수수께끼의 인물 제3의 사나이가 겨우 등장한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 거리게 하는 언론대책 문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이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전율과 불안의 감응정도야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의혹의 증폭이 바로 그런 수준. 그렇지만 언론문건은 제3의 사나이가 아닌 제3의 사나이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데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비켜가기의 명수들이 온갖 초유의 강수를 두면서 겉치레 파장으로 헛 진동을 일으키는 얄팍한 수법은 그러나 영화에서는 없다. 대신 사랑과 우정, 추적과 배반이 어우러진 죽음의 이야기가 가득 할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언론문건이면서 철저히 파헤치는 언론 하나 없다는것은 스스로 머리를 깎지 못하는 자질 때문일까. 아니면 어차피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는 자괴적인 방치로 스스로를 방어 하기 때문일까. 이미 겨울은 지금 바짝 다가와 있다. 오늘이 입동(立冬). 또한 음력으로는 10월 초하루다. 그때문에 예로부터 10월은 초겨울이란 뜻의 맹동(孟冬)이라 했고, 동짓달 11월은 겨울이 한창이라서 중동(仲冬)이라 불렀으며 섣달인 12월은 늦겨울로 계동(季冬)이라 했다. 겨울의 첫 절기로서 이 날부터 입춘까지를 겨울로 친다. 올 겨울은 웬지 너무 길고 음침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말까.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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