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학교 사회수업 시간이다. 담당 선생님은 남한과 북한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말한다. 남북통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과거 분단민족으로서 겪은 아픈 사연들까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요?"라고 동의를 구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느 한 학생이 "나는 통일을 반대한다"고 정색해서 말한다. 너무나 의외다. 그 이유는 통일이 되면 "우리가 가난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선생님은 영악한 현실 논리를 펴는 학생들이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딸아이가 어느 날 나에게 들려준 수업시간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야기끝에 딸아이는 자기도 "가난하게 되는 통일에는 반대한다"고 하면서,"솔직하게 말해서, 이 세상에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물질이 지배하고 있는 뒤틀린 세상 한복판에서 일상의 무게에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에게 이 말의 내용이 새삼 충격적일 것은 없다. 그런데 단서로 붙은 '솔직히 말해서'라는 한마디가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것은 지금 중학생 또래들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차라리 이 시대가 돈만을 중시하는 타락한 사회로 변한 것은 모두 어른들의 탓이라는 질책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돈의 힘과 매력에 대한 동경이 진하게 묻어났다.
나는 뭔가 한마디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말을 찾지 못했다. 찾았다 하더라도 그 말의 내용은 나의 현실생활과 상당한 괴리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시절 어른들은 더러 현실적으로 득이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라고 나무랐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굳이 말리려 하지 않았다. 일용할 양식조차 부족했던 가난에 대한 한탄에서 이런 말을 했지만, 그 말과는 달리 인생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항상 삶의 실천을 통해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의 어른들은 어쩌면 돈이 부리는대로 무력하게 끌려가면서 허무에 안주하는 패배주의자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지 모른다. 스스로 주체되기를 포기한 채.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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