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1)-시민의식부터 바꾸자

대구·경북지역은 갈수록 침체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오래전부터 그 '침체성'을 익히 알고 있으나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경제적 후진지역으로만 여겨져왔으나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이제는 정치·사회·문화는 물론 의식분야에서도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지역민들의 열등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화·민주화·지역화의 파고가 더욱 거세질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지역민들은 과거에만 안주할 수 없는 처지. 대(大)전환기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다. 국제도시로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안으로의 채찍질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 역사적인 기로에서 다시 한번 대구·경북지역의 재도약 방안을 점검해 본다. 지난 30여년동안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은 이지역 출신 정치엘리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지역주의적 태도를 보여왔다. '정권창출 도시'라는 정치적 기반이 지역발전의 한 축을 형성했고 그 축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은 모든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지역패권주의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寶刀) 역할을 해온 정치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지역민들은 '허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들을 경쟁적·합리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하자 가치관에 혼돈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지역 경제인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종종 권력과 '직거래'를 했다. 목청을 높이기만 하면 산업합리화자금이 몇년씩 연장됐고 또 각종 기금마련도 쉽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단숨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이제 그런 '달콤한 길'은 없어졌다. 대신 생존하기 위해 철저한 경쟁력을 갖춰야만 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제기된 지역의 '총체적 위기론'은 오히려 때늦은 감마저 있다.

무엇이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는가. 지난 10여년간 지역민들을 괴롭혀온 이 화두(話頭)에 대한 대답은 다행히도 지역민들은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도표참조〉 문제는 그 실천력이다.

지역 경제발전문제만 하더라도 △섬유산업구조의 고도화 △첨단산업 육성 △내륙 물류중심 도시화 △중추관리기능 강화 △도시형 비즈니스 산업 육성 △국제공항 건설 등 진단과 처방은 여러가지다. 생각할 수있는 모든 처방이 열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처방이 제대로 약효를 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올바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안되고 있는지' '왜 없는지'에 대한 원인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당위적인 정책과제만 나열되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막연한 정책방향만 선정했다는 사실이 근본문제를 호도, 오히려 대구경제 낙후에 한몫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이제 21세기 선진대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구지역 경제론'이 정립돼야 할 것이다. 이는 국제화-지방화 시대에 걸맞게 시민의 참여와 창의를 통한 자생적인 경제발전 메커니즘을 창출해야하고 그것이 시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지역민들은 혁신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역민들은 대체로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외지 기업인들은 대구에서 기업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외지인에게 '대구에서 살고 싶으냐'는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면 항상 전국 꼴찌권이다. 고위 공직자·금융인·대기업 임원들도 대구에서 근무할때는 가능한 '조용하게' 보낸 후 이곳을 뜨려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구를 다시 방문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흔든다.

기업인들의 세대교체가 비교적 느린것도 지역민들의 이같은 보수성에 기인한다. 젊음의 창의성과 혁신성이 자칫 '무례함'과 '경솔함'으로 비쳐져 지역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투서·진정이 여전히 많은 것도 하루아침에 바뀌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다 지역민 특유의 경상도 사나이 뚝심을 '불친절'과 '양보할 줄 모르는 옹고집'으로 외지인들이 인식하고 있다면 대구지역의 현주소는 명백해진다.

지역민들은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싶겠지만 불행히도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보고 싶은 대구, 지나치면서도 한번 들러보고 싶은 대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 국제공항을 만들고 세계적 섬유패션도시로 탈바꿈해 봐야 텅빈 집에 주인없는 꼴이다.

이제 집중적인 투자만으로 도시가 발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무리한 투자가 되레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을 지금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지역의 발전은 '돈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를 품안에 안는 것이 아니라 내 품안에 세계를 담을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지난 추석 대구시가 고향을 찾는 출향 외지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여전히 불친절하고 질서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도시가 과거보다 깨끗해졌다"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대구의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쾌거다. 시민들이 결집된 힘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변화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란 일깨워준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대구시민 스스로가 지역을 선진화하는 일에 참여하고 창의를 발휘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의식,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참여하는 적극적인 시민상을 정립해야한다. 그래서 능률과 합리가 존중되는 사회 풍토가 만들어 진다면 새천년의 미래가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대구를 찾은 외국인에게 자랑스레 보여 줄만한 것이 과연 몇 개나 되는가. 그들은 서구화 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가장 지역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것을 찾을 것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배어있는 세계적인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야할 길이다.

결국 전환기 대구·경북의 선택은 개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도도히 밀려오는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에 거슬러 수구의 논리로 회귀한다면 대구지역은 결국 '고립무원'의 외딴섬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