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때 였던가, 5학년때 였던가. 어느 여름날, 수챗구멍 속에서 건져냈던 고무공 한개가 생각난다. 건져내어 물에 깨끗하게 씻어보았으나 겉고무가 삭아지고 찌그러진 정도로 보아서 어떤 아이가 소유하고 있다가 버렸거나 잃어버린 공이라는 것을 짐작할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바람 빠진 고무공을 상당한 기간 동안 애지중지 지니고 있다가 역시 어느 날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그 공을 습득해서 지니고 있었던 기간보다 잃어버리고 난 뒤에 애틋한 상실감으로 가슴을 태우곤 했던 기간이 훨씬 길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에 실수로 교실바닥 나무판자 구멍 속으로 떨어뜨려 찾지 못했던 몽당연필 한개의 애틋함까지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교실 바닥판자 아래로 떨어뜨린 학용품들의 수효가 많아지고 아이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으면, 선생님은 어느 날 시간을 내어 교실바닥과 건물기초 사이의 공간을 샅샅이 뒤져 잃어버린 아이들의 몽당연필과 지우개와 크레용들을 찾아 그 보잘 것 없는 하나하나의 주인을 찾아주곤 하였다. 그런 날의 교실은 온통 그 찾아낸 학용품들과 찾아낼 시간 동안에 겪었던 소동의 이야기들로 들끓곤 하였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바로 교육이었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친다. 하찮은 몽당연필이 아니라, 귀중품을 잃어버렸고, 어쩌다 그것을 습득해서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방송을 여러번 거듭해도 귀찮아서 찾아가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선생님이 먼저 면담을 요청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콧방귀도 뀌지 않는 학생도 있다. 학교를 벗어난 시간에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짓으로 시간을 허송하다가 잠자러 학교가는 학생도 있다. 공부하기 싫다는 것을 선생님 면전에서 맞대놓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서도 학교를 다니고 있는 까닭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세태를 개탄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태의 추이가 그들과 한 집안에서 살고 있는 부모나 선생님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들의 사회 역시 학교이기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학교만이 학교가 아니라, 학교밖의 세상도 학교이어야 하는데, 일찌감치 그것을 단념해 버렸다. 아버지가 핏줄인 그 아들을 골방에 감금해서 굶겨 죽이기를 예사로 저지르고 있는 세상에서 학교란 말을 입초에 올리기조차 거북하게 돼버렸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술을 팔아 몇억대를 치부하고 그들에게 술을 판 돈으로 공무원들을 일 같잖게 매수해온 어른이 버젓한 세상인데, 올곧은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학교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지껄일 수 있으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두고 교육의 이름을 빌려 잘잘못을 예단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선생님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학교라는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되기를 주저하고 꺼리는 것이 분명하다.
얼마전에 있었던 교사모집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모든 곳에선 모집정원에 턱없이 미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뉴스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섬뜩했다. 그 뉴스는 우리는 바야흐로 선생님과 학생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학교부재의 시대를 일컬음이다. 가르침을 받아야할 자식을 둔 학부모들이 생계문제를 제쳐두고 가르침을 줄 선생님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녀야할 시대가 올 것임을 다분히 예고한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그 자식이 회초리를 맞았다고 입에 거품을 문 학부형이 학교로 쳐들어가 학생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응징하는 세상에 어찌 선생님을 찾아낼 수 있겠으며, 학생이 선생님 따귀 때리기를 회초리로 개구리치듯 하는 세상에서 어찌 선생님이란 말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을까. 손바닥만한 지역사회 그리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초등학교를 찾아가서 도서나 테이프같은 것을 강매하고 있는 부류들이 있는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선생님이 설 올곧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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