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진찰실에 왔다. 그 엄마에게 아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으니 아이는 대답을 잘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엄마가 "어디가 아픈지 의사선생님에게 똑똑히 말해야지, 어디가 아픈지 말해봐"라고 했다. 아이는 "저기요, 저..."하면서 계속 말을 흐렸다.
가만히 보니 그 엄마는 딸에게 남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런 훈련을 통해 억울한 일을 당할때 따질 수 있는, 기죽지 않는 자녀로 키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는 몸도 아픈데다 별로 유쾌하지 않는 병원이란 곳에 왔기 때문에 위축이 돼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났고 딸은 더욱 주눅이 들고 말았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기자식들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키우고 싶어하지만 이것이 꼭 옳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디서든 기죽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일본의 부모들은 남에게 폐(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래선지 서울과 도쿄의 거리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인도에 자전거가 지나가도 보행자들이 길을 잘 비켜주지 않는다. 보행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보행자들이 인도 가장자리로 피해준다.
어릴 때 잘 따지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반드시 더 당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학생시절 얌전하게 공부만 하여 남에게 피해를 입어도 한마디 말도 못하던 친구들이 어느날 고시에 합격해 판검사가 돼 한10년쯤 지나면 딱 위엄을 갖추고 자기할 말 다하며 남의 억울한 일까지 해결해 주는 것도 적지않게 보았다. 자신의 일에 성실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나름대로 자기 위치를 확보하기 때문에 그때는 누가 기죽어라고 시켜도 기죽지 않는다. 요컨대 기가 살고 죽고는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느냐에 달렸지 말 잘하고 잘 따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람은 원래 손해도 좀 보고 기도 죽어봐야 인간이 된다. 맥아더 장군은 자녀를 위한 기도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들을 편안한 위로의 길로 보내지 마시고 고난과 고통 속에 서게 하소서. 거기서 그로 하여금 실패한 자들에 대한 동정을 배우게 하시고...' 이용재 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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