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건설업체가 분양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집 구조나 내장재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학교며 병원, 공공기관 등 근린 생활시설도 선택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도서관이 가까이 있느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과연 몇명이나 될까 궁금하다.
◈뒷전으로 밀려난 도서관
아파트가 들어설 그 지역은 웬만한 소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인구 밀집지역이다. 한데도 관내 유일한 공공도서관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왜 도서관이 뒷전에 밀려나고 있는가. 도서관이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특별한 그 무엇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집집마다 도서관 수준의 책과 자료를 갖추고 있거나, 아예 책과 담을 쌓았거나 둘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교육.문화의식 및 수준이 제일 높은 곳으로 남들이 부러워했던 대구. 그런 대구가 지금은 '무늬'만 문화도시고 교육도시다. 문화 시장(市場)만 있고 문화는 없다. 대구가 삼류도시로 전락하게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 문화분야에 대한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만 있었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얼마만큼 투자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소형아파트 한 채 구입해도 엄청난 교육세를 물리면서도 공공도서관 건립에는 아예 인식조차 없다. 무관심한 행정당국과 자기 주장을 펴지도 않는 주민들….
◈삼류 도시로 전락한 대구
프랑스 드골대통령 집권시 문화성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는 박물관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유수의 기업과 연계시켜 운영기금을 조성하고, 국고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프랑스의 수백개의 박물관들이 그때 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인구 3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자치구 달서구의 경우 공공도서관이 하나뿐인 현실이다. 규모는 작지만 동네마다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외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런 서글픈 현실을 절감, 다소나마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사립도서관이 최근 달서구에 등록했다. 작은 사립문고에서 출발, 10여년동안 비영리 도서관 사업에 매진해온 민간기관이다. 뜻있는 회원들의 후원금이 밑거름돼 그나마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고 있다.
◈기가 막힌 공무원 문화의식
그런데 공공도서관을 대신해 주민에 봉사하는데도 사립도서관에 대한 행정당국의 지원은 너무 인색하다. "민간의 힘으로만 운영되기에는 도서관 사업이 너무 벅차다"는 사립도서관측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더욱 실감난다. 대구시의 쥐꼬리만한 지원금에 만족해야할 실정이다. 그것도 생색내기에 바쁘다. "왜 우리가 사립문고를 지원해야 합니까. 새마을문고라면 몰라도…"라는 대답만 들린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들의 이같은 문화의식에 기가 막힐뿐이다. 만일 자기 아이가 다닐 도서관이라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행정은 대민봉사가 제일의 본령이다. 주변환경 고려치 않고 멀쩡한 보도블록 걷어내 자전거길을 만드는 행정 당국의 발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엉뚱한데 예산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도서관 만들기에 힘을 쏟으면 어떨까. 당국이 못하는 일을 대신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행정당국의 의무다. 그 이익이 일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주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화도시는 표어로만 되지 않는다. 직접 현장을 뛰어 다니며 주민이 필요로하는 것을 찾아가는 행정이 되어야 문화도시가 이뤄진다. 문화경쟁시대 2000년을 앞두고 '말로의 교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徐琮澈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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