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발음대로' 반영 반론 만만찮을 듯

17일 확정, 발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시안은 애초에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국립국어연구원이 나름대로 최선의 해답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날 발표된 개정 시안이 바로 정책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몇 군데가 고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어연구원이 발표한 로마자 표기의 큰 줄기가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어를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어떤 면에선 오히려 한자병용 논란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논란도 분분하다.

왜 그런가 하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표기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로마자는 자음, 모음을 합쳐봐야 26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f나 v,x,z 발음은 아예 한국어에는 없고 l과 r도 한국에서는 ㄹ 하나로만 표기된다.

반면 한글은 자음 19개에다 모음 21개를 합쳐 음절단위가 무려 40개에 달하고 있다. 20개에 지나지 않는 로마자로 2배나 되는 한글을 다 만족스럽게 표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문제가 정답이 없다는 것은 이런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국어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시안도 분명 적지않은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로마자 표기안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한국발음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국어연구원은 개정시안의 골자를 로마자에 없는 'ㅓ'와 'ㅡ'를 표시하기 위해쓰던 반달표(˘)와 거센소리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던 어깻점(줁)을 없앴고 말머리에 오는 자음 'ㄱ,ㄷ,ㅂ,ㅈ'을 g,d,b,j로 적도록 한 점을 꼽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반달표 같은 특수기호는 규정만 있었지 실제로 거의 사용이 되지않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 초점은 우리 국민이나 외국인에게 당장 미치는 여파가 큰어두 자음 표기문제에 모아진다.

왜냐하면 외국에도 이미 일반화된 PUSAN이나 TAEGU가 BUSAN이나 DAEGU로 바뀌기 때문이다.

국어연구원은 이번 로마자 표기법 개정시안 원칙으로 '발음대로'를 들었다. 즉기존에는 로마자로는 PUSAN으로 표기했으나 한국인 가운데 아무도 '푸산'이라고 발음하는 이가 없다. 따라서 새 표기법이 실제 한국발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에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음성학에 충실한 일부 학자들이 같은 자음이지만 말머리에 오느냐, 유성음 사이에 오느냐에 따라 발음이 엄연히 다르며 따라서 표기 또한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PUSAN 등의 표기가 이미 국제적으로 용인된 상태에서 이를 섣불리 바꿀 경우 이에따른 적지않은 혼란을 우려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당장 도로표지판부터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자음 표기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되고 있지만 모음 표기문제 또한 뜨거운 감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로마자로는 도저히 표기할 수 없는'여'나 '으', '어' 같은 모음이 한글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국어연구원 심재기 원장은 정답이 없는 로마자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약속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우리가 '으'를 eu로 표기하기로 했으면 외국사람도 이 약속에 따라 '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런 표기법 개정시안은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논란이 예상되고 있으며 확정되고 나서도 국내·외에 이를 적극 홍보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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