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단-저물무렵(배창환)

하루 해 노그라진 몸 뉘려고 욱은 잔솔밭에 둥지 튼 마을 집으로 오는 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늘 땅 어디라 할 것 없이 한 폭으로 거창하게 펴놓은 애저녁 놀빛 때문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불타오르는 건 아마도 처음부터 붉은 빛에 속하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그윽한 눈빛 같은 꽃 한 덩이, 순식간에 사방팔방 꽃보라로 흩어져 모두 제 자리 하나씩을 차지해 가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문득,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흘릴 뻔하다가, 한참 전 언젠가의 바로 오늘, 저 놀 앞에서 잊어버렸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 죽음도 저런 것이었으면, 내 삶도 저런 것이었으면...

남을 것은 남고 바쁜 것들은 또 제길을 찾아 서둘러 떠나도록 홀로 남아 바라보는, 미루나무 몇 그루 있는 그 길이 점점 비어서 아득해지는, 저물 무렵

-'녹색평론'11.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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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경북 성주 출생

△경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졸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81년)

△시집'잠든 그대''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백두산 놀러가자'등

△현재 대구 성당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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