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 비서진 개편 의미

국민회의 한광옥(韓光玉)부총재의 대통령비서실장 임명은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있는 김대중(金大中)정권의 통치스타일과 여권핵심부의 권력관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김중권(金重權)전비서실장 등 총선 출마자들의 방출은 신당창당을 앞두고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최근 언론문건 사건, 옷 로비사건 등을 둘러싼 여권내 위기대응능력의 부재가 직접적인 원인으로도 작용했기 때문에 이번 비서실 개편의 의미는 적잖은 편이다.

우선 현 정부의 가장 큰 실정(失政)으로 지적되어 온 정치분야에 대해 공을 들이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 김대통령은 정치개혁법 통과를 매우 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신임실장은 범동교동계 출신의 4선 중진의원으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친화력이 돋보이는 대화형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야당과의 정치력 복원이 기대되고 있다.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23일 "국정 가운데 유독 정치만이 잘못되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한실장은 정치를 잘 알고 국민회의와 공동여당의 협조를 원만히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비서실장 경험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서 정국안정과 정치개혁 추진에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결국 김대통령은 비서실장과 곧이어 발탁될 정무수석에 정치분야를 맡기고 경제, 외교, 남북문제 등에 주력하겠다는 구상을 내보인 셈이다.

다음으로 한실장의 발탁으로 민심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여권을 궁지로 내몬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서 김전실장 등 이전 청와대 주세력들이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 데 비해 한실장 등 동교동계 인물들은 여론을 고려하는 데 익숙한 편이다. 사실 청와대가 너무 원칙에 매달리다가 민심이반현상을 낳았다는 얘기가 여권 내에 파다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앞으로 여론에 더욱 탄력성있게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는 청와대, 당, 내각 등 여권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어떤 식으로든 바뀔 것이란 추측이다. 과거 정권때 처럼 대책회의가 부활되지는 않겠지만 사안에 따라 긴급하게 협의하는 태스크 포스형식의 운영이 검토되고 있다. 한실장은 동교동계인물로 당장 국민회의와 호흡을 맞추기 쉽고 공동여당내의 조율에도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는 이번 비서실 개편은 권력 내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신주류인 김전실장과 이종찬 전안기부장이 다소 밀리고 구주류인 동교동 그룹들이 전진 배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당의 결속을 도모하고 김대통령의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을 뜻한다.

특히 이번 김실장의 교체 이면에는 박태준(朴泰俊) 자민련총재의 견제도 있었다고 하지만 동교동계의 공세가 주효했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물론 동교동계도 신당의 출현에 따른 신진인사들의 대거등장으로 예전같은 위세는 부리기 어려울 것이다.한편 한실장의 제2기 비서실 체제도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정국의 뇌관인 특검제수사가 남아있는 데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한나라당이 여당의 의도대로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하고 합당여부와 여권내 공천문제로 인한 내분 가능성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청와대의 새 진용이 풀어야 할 난해한 숙제들이다.

李憲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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