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공의 실감공간 가상현실

영화 '매트릭스'는 서기 2199년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배경이다. AI는 갓 태어난 인류를 인공자궁에 가두고 뇌속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한다. 이에 따라 인간들은 평생 1999년의 가상현실 속에 살아가며, 모든 감정과 행동도 AI에 의해 통제된다. 매트릭스 속의 인간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은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다. 현재로선 가상현실을 눈으로 느끼기 위해 특수안경, 즉 헤드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해야 한다. 현재 HMD 시스템에서 많이 쓰이는 입체화 방식은 액정 셔터식.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순간적으로 바꿔가며 스크린 상에 2개의 화면을 보여줘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조만간 시각 뿐 아니라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인간의 오감을 모두 가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도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가상공간에서 수집하는 '미켈란젤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3차원 입체기술 등 다양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통해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벽화, 다비드상 등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현실감있게 디지털화하는 것. 조각품의 경우 입체적으로 스캐닝해 수집한 데이터를 3차원 컴퓨터 모델로 변환한 뒤 여기에 정확히 대응되도록 빛의 각도, 질감 등을 고려해 표면 덧씌우기를 할 계획이다.

일본의 한 업체는 대형 화면에 비춰진 3차원 영상을 조이스틱과 같은 기구를 이용, 다각도로 바꿔볼 수 있는 가상현실기술을 개발했다. 화면의 크기는 반지름 3m짜리 구를 가로 150도, 세로 40도로 잘라낸 형태. 이같은 가상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은 바티칸까지 가지 않아도 성당의 대형 벽화를 마치 현장에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영상미디어센터는 내년 9월 열리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0' 주제영상관에 가상현실을 응용해 신라시대 탄생설화, 화랑도, 이차돈의 순교, 황룡사 9층탑, 석굴암, 안압지 등을 재현해 낼 계획이다. 700여명 동시 관람이 가능한 상영관에는 가로 24m, 세로 9m 크기의 초대형 화면과 스테레오 음향 시스템 등을 갖출 예정.

또 국내 한 벤처기업은 가상현실(VR)기술을 이용, 예산 및 인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사격훈련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했다. 비디오로 촬영한 실사화면에 가상 타깃을 투영, 이를 레이저 발사장치가 장착된 총으로 쏘면 영상인식시스템이 포착해 좌표값을 분석한 뒤 명중여부를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실제 사격처럼 반동과 총성도 느낄 수 있다.

최근 의료분야에도 가상현실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의 의사는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 가상공간에서 3차원으로 형상화된 환자의 환부 속으로 들어가 환부를 진단하고 촉감을 느끼며 수술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SRI연구소는 원격 수술지에서 수술시 발생하는 촉감을 집도 의사에게 전달, 환자를 직접 수술하는 듯한 현실감을 제공하는 원격시스템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휴스턴에 있는 의사가 가상현실 작업도구를 착용하면 시애틀에 누워있는 환자를 직접 만지고 환부를 느끼며 수술할 수 있다는 것. 의사가 작업도구를 통해 내리는 명령은 통신망을 타고 수술지에 있는 로봇에게 전달돼 로봇 팔에 장착된 미세 수술도구를 움직인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데이터퀘스트사는 올해 민간부문의 가상현실시장 규모가 총 8억2천만달러에 달하며 내년에는 10억9천만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지난 95년 등장한 가상현실 구현용 언어인 VRML(Virtual Reality Markup Language)은 3차원 입체화면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게임시대를 예고했다. 미래에 등장할 게임은 기본적으로 인터넷과 가상현실을 접목시키는 방향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일부에선 가상현실이 확산되는 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가상현실이 현재와 같은 시각 중심에서 진화돼 인체 오감을 모두 느낄 만큼 고도화되면 이를 접목한 게임이 등장,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사이버 섹스 등이 충분히 가능하리란 것이다. 때문에 보수적인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가상현실 게임의 폐해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가상 전쟁터에서 쉽게 살인을 저지르고 원하는 이성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다면 현실의 전통적 가치관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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