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최대의 이념으로 삼는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근대 사회를 대표하는 가장 큰 사회 이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유와 평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사상이 18세기 프랑스 시민 혁명에의해 대두되었으며 여기서 발달한 근대적 사상이 개화기 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져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프랑스 시민 혁명에 의해 전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보편화되었지만 18세기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민권 사상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상을 우리는 성호 이익과 같은 선각자의 사상에서 이미 볼 수 있다. 성호의 사상 속에 나타난 민권 의식과 평등 의식은 오늘날 근대적 민권 의식 및 평등 의식과 그 맥이 서로 통하고 있다.
성호의 사상 속에는 근대의 민권 의식이 이미 나타나 있다. 성호는 왕도 정치를 주장하면서 "성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백성들로 하여금 각기 그 즐거움을 즐기도록 했을 따름이다"라고 왕도를 정의했고 민생의 안전을 아울러 강조했다. 성호는 왕을 백성의 지배자,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백성의 즐거움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왕도를 논했다. 곧 백성의 즐거움을 통치의 최고 가치로 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사상이고, 오늘날의 정치 이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민생의 안전이 곧 왕도 정치라고 말했다. 이는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 사회 복지의 개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호의 사상 속에는 이미 오늘날 평등의 개념이 나타나 있다. 성호는 "양반도 반드시 농사에 힘쓰는 일로 생계를 삼아야 하며, 장사하는 일이 비록 말단의 이익을 좇는 것이나 의리를 잃지 않게 처리한다면 역시 불가할 것이 없다"라고 하여 사농합일을 주장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중기에 성호는 이미 양반도 근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권층인 양반의 근로는 곧 모든 사람들의 근로를 뜻하는 것이고 이는 오늘날의 직업관과 일치하는 것이다. 곧 신분적 사회질서를 넘어서는 평등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호는 사농공상이라고 하여 당시에 가장 천대받던 직종인 상업의 당위성과 그 중요성도 주장했다. 오늘날 상업은 사회의 중요한 직업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제 3의 물결'의 저자 엘빈 토플러를 50년 앞을 바라보는 미래학자라고 한다. 위의 글에서 보듯 성호이익은 이미 18세기에 살면서 20세기의 민권의식이나 평등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성호는 200년 뒤에 보편화된 사회 의식을 이미 그때에 가지고 있었다. 이는 성호가 사회와 역사를 뚫어보는 남다른 통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호의 이러한 사상을 통하여 우리는 근대적 민권의식을 서양 사람들로부터 익혀온 외래 사상이라는 사고를 버릴 수 있다. 이미 우리의 옛 선조들에 의해 탐색되고 모색된 것을 바탕으로 서양 사상을 수용하여 오늘날 민권의식이나 평등의 개념이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 우(포항고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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