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연극, 풀어야 할 숙제

"대구 연극 관객들, 문제가 많습니다. 의식부터 고쳐야 돼요"

연극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쉽게 듣는 얘기다. 대구 연극이 침체되는 이유가 관객들이 찾아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긴 요즘 연극계가 혹독한 '보릿고개'를 맞고 있다. 한 중견 연기자는 "20~30년 연극 인생에 이렇게 불황인 것은 처음"이라 했다. 관객이 없으니 돈도 없고, 돈 없으니 연극이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계 이런 불황은 처음

썰렁한 극장처럼 을씨년스런 것도 없다. 10명도 채 안 되는 관객, 힘 빠진 연기자, 조명은 또 왜 그리 처연한지. 객석에 앉아 있다 보면 흡사 사이코 드라마가 연상돼 온 몸이 궁색해진다.

물론 이런 불황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들도 관객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만큼 극심하지는 않을 따름이다. 대구 인구 250만명 중에 고정 연극관객이 500명 선이라면 이해가 될까. 극단이 운영하는 소극장도 예전아트홀 하나 뿐이다.

얼마 전 한 지역 극단이 거의 '호객수준'에 가까운 연극을 한 편 공연했다. 관객이 가장 원하는 소재인 섹스에 코미디까지 가미했다. 그런데도 결과는 참혹했다. 제작비 700만원이 든 연극의 열흘간 총 입장료수입이 168만원. 극단은 하루 20명도 안 드는 현실에 경악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객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관객만큼 정직한 집단도 없다.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는다. 모든 패인(敗因)은 안에서 찾아보는 것이 우선 순위다.

한때 대구 연극이 호황을 누리던 때가 있었다. 어떤 연극이든 올리기만 하면 돈이 됐던 시절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재미없으니 보지 않겠지'

그러나 그 당시 이미 작품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극단이 난립하면서 너도나도 연극판에 뛰어들었고, 겹치기 출연에 땜질식 캐스팅, 초보자 기용에 급조된 것이 많았다.

90년대 중반 서울의 대형 공연물이 대구에 진출하면서 관객은 일시에 대구 연극의 객석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아버지의 죽음''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겨울 나그네''빠담 빠담 빠담' 등 대형연극으로 관객들은 새로운 스펙터클 연극에 눈을 떴다. 윤복희 최불암 김지숙 손숙 등 스타들을 무대에서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위 말하는 상업주의 연극이다.

'상업주의'라고 하면 필요 이상의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예술계의 일반적인 시선이었고, 연극계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그러나 연극은 흥행 요소가 어느 예술장르보다 강한 편이다. 상업주의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연극의 수요자인 관객을 도외시하는 행위일 수 있다. 지난 6월,국내 연극계의 원로 한 분은 기자에게 상업주의 연극을 개탄했었다. 그러나 불과 넉 달만인 지난달, 그는 "관객에게 다가서는 연극, 관객이 원하는 연극"을 주장했다엉킨 실타래 연극인이 풀어야

대구 연극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관객을 도외시한 것이 외면당한 요인이다. 그것은 시립극단과 연극협회가 방향감각을 읽은 무기력한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시립극단의 레퍼토리는 작품성이 검증된 번역극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 읍내''감찰관'은 이미 국내에서 막이 오를 만큼 오른 작품이며 어제부터 공연하고 있는 '타이피스트들'도 수능 수험생들을 위한 원론강좌 같은 수준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인터넷 시대에 30년대 뉴욕의 타이피스트들 얘기가 왜 나오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연극협회도 흐트러진 연극계를 추스르기에 너무 무기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연극인들간의 알력, 연기자들의 프로의식 부족 등도 관객에 대한 원망에 앞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지금 대구 연극의 침체라는 엉킨 실타래는 너무 견고해 풀 재간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불을 질러야할 상황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연극인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명백해 보인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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