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에 티'는 수 천만달러를 들인 초대형 할리우드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하물며 수 백만원을 들인 연극에서이랴. 그래도 연출자와 출연자, 스태프들의 노력 덕분에 연극에서 '옥에 티'는 비교적 드문 편이다.
10여년전,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에서 공연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극 '춤추는 욕망'. 관객들로부터 호평도 받았고, 흥행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정교해야 할 추리극에 치명적인 '옥에 티'가 있었다.
'춤추는 욕망'은 한 유부남을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의 아내를 살해하는 내용.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유리컵에 묻은 여학생의 지문이었다. 여학생 외에는 아무도 유리컵을 만지지 말아야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 연극에서는 여러 명이 이 잔을 만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기에 유일하게 묻은 지문을 감식한 결과…" 운운하면서 살인범을 체포하는 장면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옥에 티'였다.
실수는 전국대학극경연대회에 출품되면서 심사위원의 지적으로 처음 밝혀졌다. 그때까지 스태프진, 출연진, 연출자는 물론이고 관객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연출자는 "아니, 이럴수가!"라며 아연실색했다는 후문. "그땐 눈에 뭔가 덮어 씌였던 모양"이라며 지금도 믿지 못하겠다는 모습.
90년대초 '벽'이란 연극이 있었다. 간첩으로 몰린 한 무고한 시민의 고초를 그린 사회극. 자동차 배터리로 전기고문을 하다 실수로 불을 냈다. 벽에 걸어놓은 짚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연기자들이 불 끄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도 극 중 장면으로만 알았던 관객들은 '효과 한번 대단하네'라며 태연히 관람했고, '불타는 벽'은 오히려 연극의 기막힌 상징성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불 끄느라고 허둥지둥하는 공안요원으로 인해 연극의 일관성은 상실됐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전기고문하다 불을 냈다면 그것이 코미디지, 사회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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