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99년 전 유럽은 종말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숱한 예언가들과 수학자, 수도사, 점성술사들이 비극적인 종말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언해왔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록을 들쳐보면 '기사들과 여인들은 토지를 교회에 헌납했고, 죄인들은 사면되어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상인들은 무역에서 손을 떼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며, 부정한 남자와 여자들은 죄를 사면받았다. 교사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보냈고, 부자들은 가게문을 닫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었다'고 되어 있다. 공포는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번졌고, 기독교인들을 단일한 신앙과 공포의 집단으로 결속시켰다.
999년 12월 31일 자정.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파손된 교회당을 다시 건립하고, 수도원을 지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 러시아는 이 놀라운 순간을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종탑 시계는 두번째의 기독교 밀레니엄에 종을 울렸다. 유럽사회는 돛을 한껏 올리고, 곧장 이교도들로부터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 십자군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원정길에 나섰다.
왜 인류는 매 세기말마다 묵시록에 근거한 종말론의 예언에 두려워했을까.
힐렐 슈바르츠의 '세기의 문'(아카데미북 펴냄)은 이런 전환기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2000년을 향한 방향지침서라는 꼬리표처럼 미래에 벌어질 현상을 미리 점치거나, 유행을 앞서 보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이미 경험했던 몇 번의 세기말을 통해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기말의 본성을 밝혀내려고 시도한다. 밀레니엄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의 기원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기말=종말이라는 인식의 바탕이 된 희년(유대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간 때로부터 50년마다 되는 해)의 주기를, 역사적 시기를 일치시킨 기원전 2세기말의 '축제의 서'나 '요한계시록' 등에 비중을 두고 풀어내고 있다. 또 마지막 세계를 점치는 밀레니엄론자들의 계산에 중요한 모티브가 된 1260년, 1492년, 1588년, 1666년, 1789년 등 달력상의 세기말을 추적, 당시 일어났던 일들과 시간의 의미를 하나씩 대조해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 여러번의 세기말에 있었던 극적 드라마를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세기말을 멸망과 재앙이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는가? 왜 이런 엄청난 전환기때마다 기술과 문학, 인간의 가치에 있어 변화가 초래되는가? 이런 질문은 모든 세기말이 모두 비슷하게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2000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감에 대해 자원 고갈과 테러리즘, 갑작스러운 금융파탄, 산업의 쇠퇴로 요약한다. 동시에 경제적, 영적 부활을 전망한다.
"사람들이 1000년에 세계의 종말이 오리라 기대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다가오고 있던 세기는 분명 그 전과는 달리 고뇌의 악몽으로 오랫동안 억압받았던 사회를 일깨워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22년 저명한 벨기에 사학자 앙리 피렌느의 이같은 지적은 새 세기를 앞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말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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