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력은 인간의 동물성과 무관"

20세기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폭력'이라는 굵은 발자국을 아로새겨 놓았다. 금세기를 휘몰아친 숱한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모가 바로 폭력이다. 1차대전은 볼셰비즘과 파시즘이라는 두 극단을 낳았다. 이들은 폭력의 측면에서 보면 쌍생아나 마찬가지다. 2차대전 이후 냉전체제 또한 세계 곳곳에서 소규모 국지전을 수반했다. 엥겔스가 경제 발전의 촉매제로 정의하기도한 폭력. 진보만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폭력 수단은 점차 발전돼왔고, 이제 아무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한나 아렌트(1906~1975)의 '폭력의 세기'(이후 펴냄)는 베트남전, 흑인민권운동, 68년 학생운동 등 60년대의 세계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20세기 전체를 사상적으로 성찰한 정치사상 에세이다. '폭력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70년에 출간됐다. 나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아렌트는 '제2의 로자 룩셈부르크'로 불리는 유태계 독일인 여성 철학자. 한꺼번에 수백만명의 생명이 송두리채 잘려나가는 극단적인 폭력의 시대 한복판을 지나온 아렌트는 이 책에서 드물게 폭력 그 자체를 성찰하고 분석해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폭력을 논할때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거울 이미지에 매몰돼 폭력 비판-비폭력 지지라는 손쉬운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이같은 경향을 뛰어넘는 구도를 제시한다. 폭력의 대립물은 결코 비폭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폭력의 대립물은 권력이다. 그는 "권력의 궁극적인 본성은 폭력"이라고 정의한 라이트 밀즈의 보편적인 정리를 논박한다. 어떻게 폭력과 권력은 상반된 개념이 될 수 있을까. 아렌트는 폭력은 사람 수에 상관없이 강제.복종을 지향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반면 권력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행동하는 순간에 존재하며 폭력에 대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폭력의 본성은 무엇일까. 이같은 테제를 풀기위해 그는 인간의 '행동 능력'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폭력을 불가피한 동물적 특성으로 보는 경향을 거부한다. 인간의 행동능력은 동물성과 무관하며 인간관계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시킬 수 있는, 우리의 의지.능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폭력은 불만을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공적인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하지만 그는 정당화시켜야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일때까지만 폭력이 합리적이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폭력의 본성과 개념에도 불구, 폭력의 탈선을 조장한 20세기가 어떻게 인간의 고유한 행동능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려고 했는지, 어떻게 폭력 행동과 그 수단만이 특권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모택동의 격언에 대해 아렌트는 "폭력은 항상 권력을 파괴할 수 있으며, 총구로부터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 권력"이라고 되받아친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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