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산책-모딜리아니와 그의 아내

순애보. 아름답고 순수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준다.

갸름한 얼굴형, 우수에 젖은 눈빛의 초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와 그의 아내 쟌느 에뷰테른의 애절한 사랑도 마찬가지.

모딜리아니와 쟌느 에뷰테른이 처음 만난 것은 1917년 7월 어느날.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인 아카데미 콜라르시에서였다. 쟌느는 19세, 모딜리아니는 33세 되던 해였다. 모딜리아니와 사랑에 빠진 쟌느는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시작했다.

고향인 이탈리아 리브른느에서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미술에 특별한 재능을 나타내면서 프랑스 파리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하지만 이국에서의 화가 생활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잘 생긴 화가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자유로운 성격을 가진 모딜리아니는 곧 술과 마약, 여자가 뒤범벅이 된 타락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쟌느를 만나기 전까지 그런 생활을 지속했다.

그에게 쟌느와의 사랑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 아몬드형 눈, 살짝 뒤틀린 코, 잔뜩 오므린 입술, 좁고 길면서 평평한 얼굴, 길게 늘어진 목 등으로 요약되는 모딜리아니 특유의 화법은 쟌느와의 생활기간중 완성돼 절정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탕한 생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쟌느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딸 지오바니가 태어났을 때 출생신고를 하러가는 길에 한 잔 한다는 것이 너무 취해버려 딸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화가로서의 생활도 여전히 순탄치 못했다. 닭 한 마리가 10프랑이던 시절, 그의 드로잉은 겨우 5프랑에 팔렸다. 첫 전시회에서 선보인 누드화가 '음란하다'는 이유 때문에 전시장에서 철거되기도 했다.

결국 술과 마약으로 피폐해진 몸에 폐결핵까지 겹쳐 모딜리아니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쟌느도 모딜리아니가 사망한 다음날, 임신 9개월의 몸으로 5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랑하는 사람을 뒤따랐다.

그로부터 며칠 뒤, 거들떠보는 사람 한 명 없었던 그의 그림은 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5프랑짜리에 불과했던 그림은 15년만에 50만프랑에 거래됐다. 자신의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했던 그가 거장이 된 것이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영광에 이른 순간 죽음이 앗아가다, 쟌느 에뷰테른-최후의 희생까지 무릅쓴 충심의 동반자'.

묘비명에서도 드러나듯 비록 생전에 그 영광을 누리진 못했지만 모딜리아니와 쟌느, 두 연인은 파리의 페르 라쉐즈묘지에 나란히 묻혀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金嘉瑩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