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들어와 옷로비 라는 말이 세상 살아가기에 힘들고 바쁜 사람들의 심성을 사납게 하고 있다. 이 도깨비 장난 같은 옷로비라는 말을 소위 이 사회의 지도층과 가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모습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사전에 등재하면 어떨까 싶다. 사실 이런 비슷한 경우를 너무 자주 대하다 보니 욕할 기력조차 없을 지경이다. 정말 밥맛 떨어지는 세상이라고 아무리 냉소를 보내고 야유를 퍼부어도 조금도 후련치가 못하다.
옷로비 사건과 관련하여 뉴스의 화면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날카로운 풍자와 지독한 역설로 1910년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종오의 후흑학(厚黑學) 이 생각난다. 후흑 은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을 뜻한다. 그는 중국 역대의 영웅 호걸들이 모두 낯가죽이 두껍고 속마음이 시커멓기 때문에 나라와 권력을 얻고 부를 누렸다고 보았다. 그의 독설에 따르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 유비, 손권은 후흑이란 측면에서 막상막하였다. 배신을 의심하여 여백사와 그의 가족을 죽이고 내가 남을 배신할지언정,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 라고 했던 조조의 시커먼 속마음과,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남의 처마 밑에 얹혀 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은 유비의 두꺼운 낯가죽은 가히 쌍벽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후흑, 즉 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뱃속이 인간 본성이며 성패를 좌우한다는 이 지독한 패러독스가 매우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현실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사람의 얼굴은 기껏 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속마음이라야 양팔이면 충분히 감싸안을 수 있는 작은 육신에 담겨 있지 않는가? 하지만 권력과 부를 얻고 지키기 위해서는 아마 후안무치(厚顔無恥)가 하늘을 찌르고, 마음 속 자리잡은 검고 엉큼한 욕심의 깊이가 밑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요즘 괴상한 조어 옷로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후흑학이 처세의 으뜸임을 새삼 실감한다.
신재기.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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