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보험요? 이젠 그런 것 안 믿어요. 노후자금까지 자녀들 혼사비용으로 다 털어넣고 난 뒤의 어려움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내 노후는 내가 설계해야죠"
한창 바쁜 자식세대와 하루종일 자식만 기다리고 있는 노부모세대가 빚는 애증의 파노라마가 서서히 그 양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자식들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걸"
신세대 노인들은 자식들이 예전처럼 부모들의 심경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풍토를 자식탓만으로 돌리지 않고, 변해버린 세월을 혼자 돌이킬 수 없다며 '자립적인 노후 설계'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일일이 손벌리지 않고, 또 궁색하지 않은 노후를 보내는데 필요조건은 바로 돈. 돈이 없으면 구차한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인식과 함께 노후 자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노후자금을 따로 준비하려는 노인들과 그래도 뭔가 부모한테서 받아가려는 자식세대들의 마찰이 빚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노후자금을 부풀리기 위해 무조건 뛰어들었다가 주식투자 등으로 고스란히 날리는 사례까지 불거지고 있다.
김씨 할아버지(65)는 일년전 퇴직금으로 받은 1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두배로 늘린 경우. 최근 모두 처분해 절반으로 아파트 한채를 사서 세를 놓고 나머지 돈으로는 다른 투자처를 찾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조씨 할아버지는 퇴직금을 부풀리기 위해 주식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린 뒤 자식들에게도 기대살기가 민망한 처지이다. 대구시 남구 희망의 자립지원센터에서 스카프접기를 하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이곳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며느리가 보내준 생활비를 쪼개 살고 있다.
그러나 노후자금에 대한 생각은 다같은 노인세대라도 고연령층이나 비교적 젊은 노인층이냐에 따라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고연령층이 일단 자식들에게 가진 것부터 주고 보자는 헌신형들이 많은 반면 젊은 노인층은 다해주고 난뒤에 오랜 여명기간을 돈없이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하다.
일흔을 눈앞에 둔 정씨 할머니(대구시 수성구 지산동)는 30년전 남편을 여의고 오직 자식들이 잘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케이스. 남편이 남긴 재산을 처분해서 2남2녀를 모두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는데, 4자녀들이 하나같이 극진히 봉양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74세인 이씨 할머니는 남편이 남긴 유일한 재산인 집마저 막내아들에게 저당잡혀주었으나 막내 아들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언제 거리로 나앉을지 모르는 불안함속에 살고 있다.
최근에는 맹목적으로 자식에게 다해주거나, 내 앞가림을 위해 먼저 자식에게 싸늘한 눈길로 돌아서서 인간관계마저 소원해지는 극단적인 방법 대신 자식뒷바라지와 노후자금의 조화를 이뤄가는 합리형들도 적지 않다.
원도희(68)할아버지는 33년 근무끝에 퇴직하면서 8년치를 일시불로 찾아서 자식들의 결혼 비용 등으로 충당하고 25년치는 다달이 연금으로 받아 생활비로 충당한다.
퇴직하고도 제지공장, 아파트 관리인 등으로 10년간 일하고 최근 취미생활에 주력하고 있는 원씨는 부부가 별도로 생활하는데 돈이 적잖게 든다고 밝힌다.
"죽을때까지 호주머니에 돈이 있어야한다"는 원할아버지는 적어도 친구들과 차한잔은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는게 현명하다고 밝힌다.
대구양친회 정영애전무는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내려고 퇴직금을 자식이나 친지 명의로 무과세 저축상품에 들어두었다가 금융실명제 때문에 떼이고 속병을 앓는 경우도 많다"면서 "노후자금에 대한 무과세 총액을 높여주는 방안도 고려돼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구시노인종합복지회관 김상근관장은 "자식이 결코 노후보험이 될 수 없다. 노후자금 준비는 늦어도 중년 이후에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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