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땀과 열정으로 떨치고 세계를 비상한 이진택(28.대구시청). '한국 높이뛰기의 1인자' '대구가 낳은 세계적인 육상스타'라는 찬사가 이진택의 화려한 전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아양초교 5년때 높이뛰기를 시작해 10년만에 아시아 정상에 올랐고 이후 10여년간 부동의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난 90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래 7차례나 한국신기록을 경신했고 아시아권에서 국제대회 최다 우승자일 정도로 세계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한다.
91, 93, 95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 96애틀랜타 올림픽 결선에 진출했고 국제육상연맹주최의 파리 그랑프리와 후쿠오카 그랑프리에서 우승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 지난 96년 동아시아대회를 제패하면서 우승가도를 달렸다. 97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 결선에 진출해 8강, 이해 9월 스페인팔마에서 벌어진 하계U대회에서는 정상을 밟으며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92년 2m28을 시작으로 한국신기록 경신에 가속을 당긴 이진택은 95년 2m33을 뛰어 넘었고 이듬해 다시 2m34를 넘어 한국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렇게 잘 나가던 이진택도 98년 큰 고비를 맞는다. 소속팀(대동은행)이 해체되면서 퇴출의 아픔을 겪었고 국제대회에서 크게 부진,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주변에서는 높이뛰기 선수로는 이미 한물갔다는 평가였고 자신도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진택은 한번 결심한 목표는 반드시 달성하고야 마는 '집념의 사나이'.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라이벌 조우 종에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진택은 1m90의 큰 키와 72kg의 날렵한 몸매로 높이뛰기에는 적격이다.
정확한 도움닫기와 빠른 스피드, 강인한 승부욕이 그를 세계적인 육상스타로 만들었다. 그의 기록과 성적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권에서 가장 빛나는 기록. 육상계는 이진택의 대를 이을 재목이 쉽게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고있다.
아양초교 5년때부터 이진택을 지도한 신춘우씨(경북기계공고 육상감독)는 "이진택이 아직 정점에 올라갈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공중동작시 체력을 타는 리듬감각과 떨어지는 체력만 보완한다면 다시 한번 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할것"이라고 말했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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