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나이가 왜 주민증 표시하고 달라?"
"이 사람, 친일파집 손자인가 보네? 지난 세월을 모르는구먼"
그래.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우린 영 다른 세월을 살았었지.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호적에 올리는 부모가 몇이나 됐을까?
안그래도 먹을 것 많잖아 너나 없이 부실했던 세월, 거기에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던 호열자가 몇년거리로 덮치니 무슨 수로 아이의 성장을 확신할 수 있으리요. 마마는 또 어떻고. 소아마비인들 약이나 제대로 써봤던가? 아이 낳아 반타작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던 시절.
조금 나아졌다는 60년대. 하지만 그때도 세상 변화는 전혀 없는 것 처럼 그렇게 더뎠지. 고무신 한켤레 얻어 걸리자 혹여 상할까봐 벗어 들고 다니던 아이들이 있었고, 일철 들었다 하면 텅 비던 농촌 교실. 모내기철 '악다받게' 등교한 아이들이 쓰고 온 커다란 삿갓 밑 등허리에는 세살배기 동생이 매달려 있기도 했었지.
나일론 옷감, 양은 그릇 나오자 그렇게 좋아하던 부인네들.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 하나 장만하게 되면 여한 없으리라던 아주머니들. 피임법 보급된 뒤엔 드러내지도 못하고 부심하던 모습. 군사쿠데타 이후 보급된 '스피커' 방송에 놀라워 하고, 자전거 구경하느라 몰려 다니던 풍경, 전깃불 들어 오자 '천지개벽'이라던 어른들….
우리 생활에 큰 변화가 온 것은 거의가 70년대 이후일 터. 63년도에 불과 100달러였던 1인당 GNP. 76년도에야 1천달러, 83년도 2천달러, 89년도에야 5천달러를 넘어 섰었지. 70년도 전후해서 고향을 떠나 갔던 그 많은 청장년들도 이때 쯤에는 중년을 넘기며 나름대로의 삶을 도시 속에 구축하고 있었으리. 우리 생활이 앞으로 펼쳐질 모습도 내다 보이는듯 했고.
하지만 세상은 또 바뀌었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60년대까지는 그 의미를 체감하기 쉽잖았으리라. 변화가 워낙 더딘 때문. 그러다 70~80년대는 "그렇구나" 느낌이 올만도 했던 시기.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옛날 10년 동안 이뤄질 변화가 불과 몇달 사이에 진행돼 버린다.
자가용 승용차. 전국 집계래야 67년도에 겨우 9천800여대에 불과했던 것이, 10년 뒤인 77년도엔 8만5천대, 87년도엔 71만대로 서서히 늘더니, 90년대의 그 위력이라니! 90년도의 190만대가 93년도엔 400만대를 돌파해 버렸다.
컴퓨터? 그걸 우리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87년도까지도 전국에 있던 것이라고는 전부 10만여대. 그것도 거의 전부가 사무용. 하지만 8년 뒤인 95년도엔 530만대를 훌쩍 뛰어 넘었다. 더 이상의 집계는 의미 조차 없을 정도.
더 놀라운 사례, 휴대폰. 겨우 89년도에야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기껏해야 전체 역사 10년. 지금 사용자 숫자는 전국에 2천만명 이상. 94년도 100만명 이하, 96년도 300여만명, 97년도 700여만명, 작년 중반 1천만명… 하더니 그사이 2천만?
이런 일들이 어찌 물질적 환경의 변화만을 얘기할까? 대학 진학이 일반화되고, 지방은 갈수록 도시 주변화 됐으며, 인터넷으로 등시간 정보 거래가 진행 중이다.
해외여행 쯤은 소먹이던 것 처럼 그저 어지간한 일? 환경호르몬이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다 뭐다 해서 식품 안전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됐고, 건강이 최대의 관심거리로 부상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삶의 태도 역시 많이도 바뀌었지? 이젠 변화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기 보다, 오히려 겁낼 정도가 돼 버렸으니. 그 속도가 하도 빠르니, 까딱하다간 곧바로 구닥다리 되기 십상.
거기다 누가 1천만원으로 100억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증권·벤처 바람… 변화가 세계 단위로 진행돼 버리는 마당, 범상한 소시민들이 무슨 수로 따라 잡기라도 할까?
이러다가 혹시 '보통 사람'은 모두 소외돼 버리는 세월이 닥치지는 않을까? 정보 자본주의 시대에는 이것이 불가피하리라는 예보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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