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경제학자가 보는한국경제-(2)아베 마코토 연구원

◈아베 마코토(安倍 誠) 아세아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경 력

 △히도츠바시(一橋)대학 경제학부 동 대학원 수료(석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연구소 객원연구원(2년)

 △1990년부터 아세아경제연구소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재직

저 서

 △경제위기와 한국, 한국과 대만의 기업규모 비교

 △그외 한국관계 논문 다수

-한국 경제위기의 핵심은 금융제도의 위기대응 능력이 부족하여 발생했다고 지적했는데.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결정적 요인은 금융 시스템에 있었다고 본다. 96년에 종합금융사법이 발효돼 단기금융사들이 종합금융사 인가를 받고 외환거래에 뛰어들어 일반 시중은행과 경쟁하게 됐고, 일본과 EU권으로부터 단기저리의 자금을 꾸어 국내외 기업들에게 중장기 고리로 융자해 주는 곡예같은 일이 벌어졌다. 빌린 것은 단기고 빌려준 것은 중장기이니 국제여건에 변화가 오면 자기보유 외화가 없는 상태에서 빌려준 것을 회수하기 전에 빌린 것은 갚아야 하는 사태가 올 수 있는데 바로 이 밸런스가 깨어진 것이 외환위기의 핵심이다.

-97년 11월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일본 정부는 단기성 자금의 회수를 늦추어 달라는 한국 측 요구를 거절했는데.

▲한국 측으로서는 섭섭할지 모른다. 또 미국의 대일 압력때문에 지불유예를 해주지 않았다는 말들이 한국에서도 돌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국가간, 기업간에 자국의, 자기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은 순리가 아니겠는가.

-금융기관의 해외 단기자금 차입과 융자에 대한 감독기능도 발휘되지 않았는데.▲그렇다. YS정권 국정지표의 하나가 국제화, 세계화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OECD가입을 위한 전단계 조치로 외환거래의 자유화를 크게 확대하면서도 자금흐름을 점검하는 감시기능마저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버린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금융은 관치금융으로 길들여져 왔다고 보는데.

▲한국의 특수상황이었다고 본다. 자원은 없고 숙련된 노동력도 없고 오직 가난과 실업자만 있는 상태에서 한정된 금융자원을 국가가 통제, 배분해 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30년이 지나는 사이에 관치금융이 관행이 됐다고 본다. 그래서 은행이 민간기업을 통제할 능력이 없게 됐다. 과잉·중복투자인지를 가려내고 수익성이 있는지를 판별할 수 없게 되고 정경유착의 분위기에서 높은데서(청와대, 정부 고위층) 융자해 주라면 해주는 사이에 대기업, 재벌이 형성되고 은행은 재벌들에게 물린 상태가 됐으며 대우사태에서 처럼 70조원 이상을 빌려주고 절반도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80년대 말에 금융시스템의 구조조정이 시작됐어야 했는데.

▲적절한 기회를 놓쳤다.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설 때가 한국에게는 구조조정의 적당한 기회였다. 그러나 오히려 대기업 중심으로 중복·과잉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한보가 철강에 진출했고 자동차·석유화학 등에 그런 현상이 심했다. 금융기관의 자율성이 보장됐다면 융자에 신중을 기하는 등 금융자원의 낭비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위기에서도 국가신용도가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 직전의 기아사태도 채권은행단의 통제력이 없어서 악화시켰다고 보는데▲97년7월 기아가 부도나게 되고 채권은행단이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 최고 책임자의 퇴진을 요구했으나 3개월을 끌었다. 외국에서는 국가가 자금을 지원, 기아를 국유화하는 것으로 보았고, 한국 정부가 금융을 시장기능에 맡기지 않는 것을 보고 국가신용도를 급격하게 낮게 평가했다. 해외 단기자금 거래내역을 점검하는 장치에 고장이 나 있던 중에 기아사태는 남아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속히 빠져 나가는 계기가 됐다.

-기아사태는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모든 후보들이 표를 의식, 기아근로자들의 농성을 부추기는 등 사태 악화에 기여한 꼴이 됐는데.

▲경제논리가 배제되고 정치논리가 기승을 부린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금융구조개혁의 진전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동안 6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몇몇 은행의 퇴출, 합병, 장부상 BIS(국제결제은행의 부채비율)충족 등의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실의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불분명하고 경영혁신을 통한 신용평가와 위험 관리능력 등의 자율성이 보장됐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모든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이 투입됨으로써 사실상 국유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시장기능의 회복은 아직 멀다고 본다.

-금융구조조정은 놀랄만큼 많이 했지만 실제 부실상황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고 지금껏보다 앞으로 할 과제가 훨씬 많다는 지적인 것 같다.

▲목표는 금융시스템의 자율적 작동이다. 정부의 철저한 감시·감독체제가 수립돼야 한다. 우선 민영화, 해외 매각 등으로 소유구조에 변화가 와야 하며 재벌 및 대기업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제2금융권은 사실상 재벌이 장악하고 있지 않는가. 현재의 금융감독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발족시킨 것은 감독업무의 중립성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금감위는 금융구조조정, 기업구조조정에 금융시장안정 책임까지 떠맡아 중립성을 해치고 있다. 시정돼야 할 것이다-금융 자율기능이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90년대 들어서도 재벌 중심의 중복·과잉투자가 산업구조를 왜곡했다고 지적했는데.

▲80년대 후반의 고도성장의 결과 임금이 급격히 상승, 노동집약적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되어 수출부진이 심화됐고 91, 92년에는 건설(200만호 주택건설), 민간소비가 활기를 띠었고 93, 94, 95년에는 엔고와 반도체 수출에 힘을 얻어 경상수지가 개선됐으나 96년 반도체 가격폭락을 계기로 침체기에 들었다가 IMF사태를 맞았다. 80년대 후반, 90년대에 초에 재벌중심으로 대량생산체제인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에 과잉 투자가 이뤄져 산업구조가 자본집약형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대기업에 의한 5대 수출품목(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철강)이 5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소수품목 집중현상은 엔고·엔저 등 기복이 있거나 시장불안사태가 오면 경상수지 전체에 타격을 가하게 된다. 수출품목의 다변화를 기해야 한다. 공작기계류는 수출비율이 0.4%로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공작기계는 공장마다 용량이 다르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이런 부분이 중소기업의 몫이 돼야 하고 산업전반에 걸쳐 고른 투자가 유도돼 특정 재벌 중심의 산업구조가 재편돼야 한다.

-산업의 중심에 중소기업이 서고 대기업과 협력·공생체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인데.

▲재벌의 계열사 및 하청기업들은 친·인척 등 연고자의 몫으로 경쟁상대가 없어서 기술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원인이 됐다. 중소기업은 사업성이 있어도 돈을 빌려쓰기가 어렵고 정부의 정책금융도 조건이 까다로워 중소기업 육성은 구호로만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중소기업 육성책의 핵심은 무엇인지.

▲첫째, 역시 금융시스템이 자율기능을 해야 한다. 은행이 소신껏 제대로 심사하고 사업성을 판별할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둘째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적 특성을 살려서 중소기업의 뒷바라지를 적극적으로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에 집중된 권한·자원 배분권 등이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돼야 할 것이다.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함은 물론이다. 셋째, 외국기업과의 협업·제휴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크게 줄고 협업관계도 침체되고 있다. 일본의 기술하청국가라는 걱정에 앞서 과잉경쟁으로 손해보느니 건실한 협업을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 대구에서는 대구테크노파크 건설, 한국의 패션단지 건설을 위한 밀라노프로젝트 등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전이 필요하다. 다만 패션단지 건설에 유의할 점이 있다. 일본의 후쿠이(福井)시가 직물을 주로하는 섬유도시로 이름나 있지만 직물과 패션의 결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태리의 밀라노는 역사적·전통적으로 직물과 패션이 결합돼 왔다. 대구는 직물단지인데 그 특성을 살리면서 조심스럽고 천천히 패션과의 결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패션은 서울에 집중돼 있고 인터넷시대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대구에서도 의욕적으로 패션정보를 탐색해 가는 노력을 하면 당장은 아니라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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