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회는 놀고 있다. 실업자도 논다. 고3은 수능이 끝나 놀고 고1은 대입제도가 바뀌었다고 논다. 노인들은 경로당에서 놀고 10대는 레스토랑에서 논다. 놀자면 돈이 든다. 국회의원들이 월급을 올렸다.
지난 11일 아침 MBC뉴스'주간북한소식'은 북한방송에 옷로비사건이 보도되는 장면을 소개했다. 진행자는 북한뉴스의 표현·억양이 재미있다는 멘트까지 붙였다. "지금 남조선에선 최순영 신동아그룹회장의 여편네가 남편의 구속을 막기위해 괴뢰검찰총장을 지낸 김태정의 여편네를 비롯한 고관들의 여편네들에게 고급옷을 사주었다는 사건이 문제가 돼 시끄럽습네다…"
옷로비사건의 주제가 기실 옷이 아니라 말, 그것도 '연속된 거짓말'에 있듯이 작금의 실종된 정치도 말때문이요, 혼란스런 사회도 다 말 때문이다. 서갑숙이 책(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도 검찰이'씰데없이' 수사운운하고 입을 떼는 바람에 50만부 넘게 팔아줬지, 장선우가 만든 영화'거짓말'도 영등위가 외설운운하며 등급보류판정을 내리는 바람에 CD불법판매가 판치고 있지-.
말한마디 글귀하나가 20세기 끝판 한국의 정치판을 '노세노세 늙어노세'로 만들어버렸다. 비속어에 원색적인 용어가 난무했다. 존칭생략은 둘째치고 '호로-'와 '후레-'가 입에 달린 국회의원나리들 이었다.
군부독재의 3공 박통시절, 야당당수였던 고 박순천 여사의 총선유세 발언이 기억난다. 수성천변, 민주(民主)에 목마른 수십만 청중이 운집한 속에서 성능나쁜 스피커로 터져나오는 소리, "…국민여러분, 지금 이북에는 공산당이 있고 이남에는 공화당이 있습네다" 촌철살인, 유세해학의 백미였던 이 한마디에 수십만개의 손바닥소리는 당시의 수성교를 와르르 무너뜨릴만 했었다.
당시 유세장에 좍깔린 사찰형사들은 그러나 공산당과 공화당을 매치시킨 그 말 어디에서도 박 여사를 잡아넣을 꼬투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독설(毒舌)의 해학이었던 것이다. 유권자들은, 국민들은 그렇게 카타르시스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국회의원들은 배우기도 더 많이 배웠다. 그런데도 여·야대화에는 품위도 없다. 해학도 없다. 쌍시옷만 많다. 붕어가 없어도 그것은 붕어빵이지만 정치에 해학이 없으면 그건 정치가 아니다.
고만한 국민에 고만한 정치인가. 야당 정형근 의원의 '빨치산 수법'운운한 발언은 품위에서 빵점이요, 정의원을 향해 '사람××가 아니다'고 퍼부은 이영일 대변인의 욕설은 해학에서 영점이다.
막말이 판치다보면 어거지·거짓말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서경원 전의원은 "북한서 받은 5만달러는 공작금이 아닌 통일자금"이라고 했다. 올초 영남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세미나에 와서 언론의 지역감정조장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아 그 오만함을 자랑했던 박지원 문광부장관은 10월의 중앙일보 사태관련 국감답변에선 또 이렇게 말했다. "(사장실에서 물컵을 집어던진 것이 아니고) 넘어지면서 컵이 떨어져 유리가 깨진 겁니다"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서 에이브라함 링컨의 명언을 배우고 존 F 케네디의 명연설을 기억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조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우리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합시다'- 말한마디가 불러내는 대중적 감동은 실로 크다.
우리의 대통령, 우리의 정치인들은 왜 우리에게 대중적 감동을 주지못하는가?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강민창), 나는 깃털(홍인길), 공업용 미싱(김홍신), 공작금 아닌 통일자금(서경원) - 5·6공에서 문민·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사에 기록될 이 해괴망칙한 발언들에서 많은 사람들은 '고만한 정치·고만한 국민'의 무력감에 빠지고마는 상황이다.
지금 정치는 민심을 잃었다. DJ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절반이하로 뚝 떨어졌다. 상대가 떨어진만큼 올라가야할 한나라당의 민심도 20%에 턱걸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일하지않고 싸움질이다. 이북에는 노동당이 있고, 이남에는 노는당이 있다.
이 정치적 위기상황을 여·야 모두 체감하는 것 같지않다. 21세기는 닥쳤다. 정치의 봄, 선거철도 닥쳤다. 말싸움판이 또 시작된 것이다. "이것 보세요! 새천년 해맞이행사는 왜 합니까, 온 천지에 종은 왜 자꾸 만들고, 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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