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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 경북 전성기 활짝 꽃피워-(10) 박만태

1968년 제49회 전국체전(서울)서 대반란이 일어났다. 66년과 67년 전국체전서 거푸 서울에 무릎을 꿇었던 경북이 마침내 2전3기(二顚三起)에 성공, 숙적 서울을 제치고 종합우승컵을 안았다. 이듬해 다시 서울에 1위를 내준 경북은 70년 우승컵을 되찾아오는 저력을 발휘했다. 경북이 전국체전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때 뿐이다.

당시 경북체육회 사무국장으로 체전단장을 맡아 두차례 종합우승을 이끌어 낸 박만태(78)경북체육회 고문. 그는 '영원한 체육인'으로 불린다. 전국체전 위원이기도 한 박고문은 지금도 웬만한 체육행사에 참여하는 열성파다.

경산이 고향인 박 고문은 초교시절 외가인 영천에서 육상을 시작하며 체육과 질긴 인연을 맺었다. 육상(110m허들)선수로 일제때와 광복후까지 선수생활을 하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까지 1, 2대 대구시의원과 신문기자로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박 고문은 63년 체육인 육성의 산실역할을 한 경북스포츠학원의 학감을 맡으면서. 다시 체육과 연을 이은뒤 경북체육회 사무국장, 경북육상연맹회장, 경북체육회 상임부회장 등 40년 가까이 경북체육행정의 실무자로 지역체육의 기틀을 다졌다.

육상을 좋아했던 만큼 박고문의 집에는 육상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가난했던 당시 비교적 풍족했던 박고문에는 각종 육상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필수코스였다. 6.25전쟁 때는 손기정을 비롯, 서윤복, 함기용 등 쟁쟁한 마라토너를 비롯, 지도자들이 박 고문집에서 피난생활겸 훈련을 하며 한국마라톤의 맥을 이어 갔다.

박 고문은 선수 지원육성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단거리의 엄팔용, 이동헌, 손경수와 멀리뛰기 이이재, 중거리 배희조 등이 박고문의 도움을 받아 국가대표들로 이름을 날렸다. 박 고문은 문교부장관상, 경북도체육문화상, 대한민국국민훈장 목련장,대한민국체육상을 수상했다.

鄭仁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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