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바라보는 것에도 특이한 맛이 있다. 지도도 그럴 수 있는 것 중의 하나. 옛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지도는, 오늘날의 건조무미한 지도가 아니다. 거기에는 시대 고유의 시각과 생각이 배어 있고, 심지어 미술사적 특징까지 가미된다.
기발한 사례 하나. 조선조 후기에 들면 서구의 과학화된 세계지도들이 도입된다. 지구는 둥글고,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 우리의 많은 선각자들은 이 신지식을 받아 들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
그 결과 그 충격을 흡수하면서 전래의 지구관도 절충한 특이한 세계지도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천하도'. 여기에는 중국.한국.일본 등 종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알아 왔던 나라들은 그대로 표기하되, 서양이나 나머지 나라들의 자리는 중국의 전설서 '산해경'에 나오는 나라들로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도 서양지도들이 채택하는 위도.경도 표시는 수용했다.
일반인들을 위한 옛지도 해설서를 표방한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 4×6배판, 272면)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역사학자 한영우(서울대).배우성(청운대) 교수 및 미술사가 안휘준(서울대) 교수 등 3명. 한교수는 우리의 옛지도가 제작돼 온 역사를 설명했고, 배교수는 천하도를 중심으로 한 옛지도에 나타난 세계관을 분석해 보여준다. 안교수의 역할은 우리 지도에 특이한 그림으로서의 성질을 살피는 것.
이 책에 따르면, 우리 옛 지도는 현대 지도와 달리, 평면 지도가 아니다. 땅을 비스듬하게 내려다 보고 그리는 경우가 많고, 입체성이 뚜렷한 것이다. 또 지금과 달리 땅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봐, 그 생명에 따라 오행의 색깔을 다르게 하며, 산은 뼈, 강은 혈관으로 파악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지형은 지금 지도로는 그냥 하나의 땅 모양일 뿐이지만, 그 이전에 일본인들은 '토끼 모양'이라 했고, "호랑이 모양인데 왜정 때 왜곡했다"는 반발도 있다. 그러나 옛 지도 '대동총도'는 사람이 중국을 향해 구부려 있는 모양이라고 한반도를 파악했다. 그래서 백두산은 머리, 태백산맥은 등뼈(백두대간)로 바라 봤다. 지도에서 살아 약동하는 생명을 읽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도는 끊임 없이 제작돼 왔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것만도 6천여 종에 달한다는 것. 많게는 군사적 목적에서, 때로는 운하를 파기 위해서나 하천 준설 및 바다 간척을 위해서도 지도가 제작됐다. 세금 징수가 목적인 때도 있었다. 나라 전체를 그린 것도 있지만, 군(郡)별 지도, 성(城)별 지도가 많고, 일본.중국.오키나와 지도도 만들어졌다.
그 외에 이 책에선, 실경 산수화에 연접했던 지도 제작의 회화성, 대마도를 경상도의 부속섬으로 파악하고 만주를 우리 땅으로 봤던 시각, 일본을 아주 작게 그리거나 모양을 거꾸로 그린데서 드러나는 일본 무시 사조, 독도를 선명히 표시한 울릉도 지도 이야기, 뛰어났던 우리 지도 제작자들, 중국에 간 우리 사신들이 중국지도를 그려 가는데 대해 소동파가 우려를 제기했던 일 등등에 대해서도 얘기 들을 수 있다.
朴鍾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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