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4월의 15대 총선에서 대구는 충청권과 함께 '녹색돌풍'의 양대 진원지였다. 13개 선거구에서 무소속 3석을 제외하고 자민련이 8석을 휩쓸어 천신만고 끝에 2석을 건진 집권 신한국당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당시 대구를 제패했던 자민련 의원들은 '반DJP정서'로 인한 민심이반에 속수무책인 상태인 반면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역 정서에 힘입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런 지역의 정서에 편승, 당적 이동도 15대 임기동안 잦았다. 15대 임기 초반의 당적이동은 무소속의 여당(신한국당)행이 주류였으나 대선 직전에는 자민련 의원들의 한나라당행이 추세였다. 반YS이던 지역정서가 선거를 앞두고 극명하게 반YS,반DJ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대구에서 당적이동의 첫테이프를 끊은 의원은 무소속의 백승홍 의원(서갑)이다. 백 의원은 "당선되더라도 여당에 결코 안간다"며 공증까지 했지만 신한국당을 택했다. 하지만 입당의 변이기도 했던 위천단지 조성과 지하철부채 해결은 해결 기미가 없다.
특유의 집요함 때문에 지역현안 챙기기의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너무 말만 앞선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뒤이어 무소속의 서훈 의원(동을)은 정치적 뿌리인 YS의 신한국당으로 적을 옮겼다.
97년 대선 직전에는 무소속 이해봉 의원(달서을)과 자민련의 박종근(달서갑)·안택수 의원(북을)도 여당행을 택했다. 자민련의 이의익 전의원(북갑)도 대구시장 후보자리를 약속받고 같은 길을 걸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 전의원은 다시 자민련후보로 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다.
물론 당시 이들은 지역발전과 이회창후보 당선, DJP단일화에 대한 반발 등의 이유를 달기는 했지만 '철새정치인'이라는 비난이 곧바로 뒤따랐다. 이들은 당직과 상임위 배정 등에서 '입당파'라는 이점 때문에 혜택을 보기는 했지만 당적변경으로 인한 부담감이 늘 뒤따랐다. 재경위, 산자위 등 핵심상임위와 한나라당의 예결위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근 의원은 지난해 심지어 대구 지하철 관련 예산과 지역구 예산을 맞바꾸기 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또 자민련 대변인 출신인 안택수 의원은 한나라당 대변인 시절이나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당적변경이라는 '원죄' 때문에 소신발언에 상당한 애로를 겪기도 했다. 전국구로 지역구(수성을)를 맡은 한나라당의 박세환 의원은 국방위에서의 활약상에 비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데는 다소 힘이 들어 보인다.
자민련 소속의원들은 지역정서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YS정권의 핍박속에서 화려하게 복귀한 박철언 의원(수성갑)이나 15대에서 재기에 성공한 이정무(남)·박구일 의원(수성을)등이 그들이다. 박철언 의원은 96년 5월부터 야권후보 단일화 주장을 펼쳤다. 당시 반DJ정서가 극심했던 지역정서를 반영할 때 엄청난 위험요소가 뒤따랐지만 정확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기류를 앞에 두고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자민련 원내총무와 공동정권 초기 건교부장관을 지낸 이 의원은 15대 국회에서 누렸던 자리만큼이나 속앓이가 극심하다. 원내총무시절과 장관 시절 무난히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역현안과 직결된 주무장관을 지낸 탓에 야당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는 등 '2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과 달리 한나라당 중진인 강재섭의원(서을)은 다소 느긋하다. 정서상의 이점에다 '대구의 꿈나무'로 일컬어지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반신한국당', '반YS정서'를 거의 단신으로 돌파한 저력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98년 한나라당 총재경선에서 중도하차하면서 '뱃심'이 다소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른다.
자민련 박준규(중), 김복동 의원(동갑)은 일단 15대를 거치면서 다소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느낌이다. 지난해 국회의장직에 복귀한 박 의원은 여야를 초월한 국회의장을 천명하는 등 자유주의적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정쟁 와중에 국회개혁 문제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김 의원은 15대 초반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순탄한 의정활동을 하지 못했다. 재기를 위해 노력중이지만 전도는 불투명하다.
김석원 의원의 사퇴로 치러진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박근혜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부총재로 일약 발돋움했다.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 단골연사로 등장해 "박근혜만 오면 당선된다"는 유행어를 낳았다. 또 박승국의원(북갑)은 국회 교육위 활동중 사립학교법 개정에 적극 나서 교육개혁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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