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환(가명.49.대구시 달서구 신당동)씨의 세 딸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중.고교를 중퇴한 이들(20, 17, 14세)은 대신 유흥주점과 노래방, 다방 등을 오가며 돈을 번다. 옷 갈아입기 위해서나 간혹 들를 뿐, 집엔 거의 들어오지조차 않는다.
'딸들의 가출'이 시작된 건 최씨가 5년전 교통사고로 온몸이 마비돼 경제력을 잃으면서부터. 집안사정으로 어릴때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역시 고아 출신인 부인과 결혼, 그간 소박하게나마 삶을 꾸려온 최씨의 생활 의지도 IMF이후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생보자 지원금과 장애인 수당으로 받는 한달 50만원이 유일한 생계비. 최씨에겐 지긋지긋한 가난을 딸들에게까지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자책감이 생활고보다 더 고통스럽다.
IMF이후'빈곤의 대물림'이란 악순환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부모세대의 경제적 빈곤이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져 자활의지마저 꺾이
면서 그들 2세의'빈곤한 미래'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일선 복지행정에서 접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빈곤층 아동 및 청소년 관리문제죠" 대구시 달서구청 보건복지과 이승철(36)씨는"장기적이거나 예기치 않은 빈곤상태가 가족 붕괴마저 낳기 일쑤"라며"가족의 삶에 대한 책임감없이 각종 경제적 후원을 당연시하는 빈곤층의 생활은 자녀의 무질서한 생활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예전부터 형성된 비산.대현동 일대의 영세민 거주지역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거공간의 편의성만을 앞세워 정책적으로 세운 영구임대아파트 등지에는 빈곤의 세습화가 '법칙'마냥 잔존하고 있다.
대구지역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14개. 생활보호대상자와 일반 저소득층 1만8천700여가구가 모여 산다. 표면적인 주거환경은 다소 나아졌지만 이들의 빈곤상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생활환경의 변화와 역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영세민 집단화를 단행한 결과 상당수 임대아파트가 '빈곤의 섬'으로 전락했다.
김찬수 대구시도시개발공사 업무팀장은"월 1만8천-2만원의 임대료마저 체납하는 가구가 연간 전체 가구의 10%에 달한다"며"IMF이전엔 일반주택이나 다른 민영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전세를 들어 이주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고 밝힌다. IMF가 이들을 더욱 빈곤으로 내몰고 그만큼 자활의지를 꺾어놓았음을 보여준다.
중산 계층과의 교류가 줄며 생활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쪽으로 흐르면서 빈곤층 아동과 청소년중 일부는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다 나락의 길로 빠져드는 경우가 적잖다.
생활고로 끼니도 제때 챙겨주지 못한 홀어머니와 살던 영식(가명.9.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이는 가출을 밥먹듯 하며 서너살 위의 동네 '형'들과 어울려 1년 넘게 동성로에서 앵벌이를 했다. 지난 3월 복지관 관계자에게 발견돼 교화시설로 넘겨진 영식이는 그래도 다른 친구에 비해 좀 나은 편. 빈곤층 자녀중엔 어릴때부터 각종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를 수시로 드나드는 10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소외계층에게 자활의지를 북돋워줘야 할 사회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은 심리상담 등 일부를 제외하곤 밑반찬 제공, 후원금 지원, 인력서비스 등 경제적 시혜 위주에 머물러 있는 실정.
하후남(27.여) 신당사회복지관 재가복지팀장은"자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 수도 절대 부족하지만, 이미 도움받는데 익숙해진 이들에게 자활의지를 키워주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한번 영세민은 영원한 영세민'. 가난은 물려주었지만 절망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빈곤 1세대의 자활의지마저 스러진 세기말. 빈곤은 이제'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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