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7일 오전 10시 천용택(千容宅) 국정원장을 1시간 가량 배석자 없이 접견했다.
이날 아침 일부 언론에 천 원장의 발언을 빌려 김 대통령이 대선전에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회장으로부터 모기업의 정치자금을 건네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물론 이날 접견은 며칠전부터 예정돼 있던 정례 업무보고 자리였지만 정치권과 청와대 주변의 관심은 이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천 원장의 거취에 집중됐다.
천 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당시 발언 경위를 해명했다.
해명 요지는 '대통령은 정치자금에 대해 투명하다는 것을 법조출입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물론 97년 11월 정치자금법 개정 전에는 홍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대가성이나 불법적인 돈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전했다.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엄한 질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처신을 똑 바로 해야 한다"며 정국경색 상황에서 불필요한 발언으로 경색을 가중시킨 천 원장을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내며 천 원장의 사의는 반려했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사의 반려 배경에는 천 원장의 발언 진의가 '김 대통령이 정치자금에 관한한 투명하다는 것'을 강조하다가 나온 '선의의 실수'였다는 점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김 대통령 주변에 있던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심기가 최근들어 가장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천 원장이 법조 출입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하고 발언한 내용을 기자가 야당측에 전해 줘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보고를 받고 기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유감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김 대통령의 심중을 반영하듯 박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호의로 한 얘기인데 이를 기사화하는 것은 기자들의 윤리문제"라면서 "미국의 경우 신문기자가 '오프 더 레코드'를 파기했다가 해고를 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번 사건도 기자가 야당측에 정보를 전달해 발생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16일 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총무가 자신의 발언을 공개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천 원장은 곧바로 공보관실에 해명 자료를 낼 것을 지시했다.
천 원장은 거의 뜬 둔으로 밤을 지새운 뒤 이날 새벽 여권 요로에 전화를 걸어"진의가 와전됐다"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으며 아침에 출근해 청사에서 국정원 간부들과 긴급 대책회를 가진 뒤 청와대를 방문해 김 대통령을 접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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