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007 19탄 언리미티드 개봉

전세계를 장악하려는 악녀 일렉트라(소피 마르소)가 본드에게 아쉬운듯 한 마디 한다. "세계를 그대에게 줄 수도 있었는데…" 정의의 수호자답게 본드는 응수한다.

"세계로는 충분치 않아(The world is not enough!)

'금세기 마지막 007'이란 광고 카피를 달고 한국에 상륙한 '007 언리미티드'. 제19탄 007 시리즈도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로 시리즈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번의 음모는 송유관 장악. 세계의 석유산업을 독점하려는 거대 재벌 상속녀가 핵폭탄을 터뜨려 자기 회사 송유관만 남기고 모든 송유관을 없애려는 음모를 꾸민다.

시작하자마자 터지는 수상 보트추격전, 스키를 타고 벌이는 설원의 총격전, 아슬아슬한 폭발신 등 속도감과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치장하고 있다.

007 제임스 본드는 '영화'라는 난자에 '냉전'이 수정되면서 태어난 인물이다. 켄 플렛, 프레드릭 포사이스등 유명한 냉전추리작가들의 퇴조, 또 이를 즐겨 영화화했던 존 프랑켄하이머등 냉전 전문감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가운데 유독 007만이 살아서 장수하고 있다.

냉전의 고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악당군(群)을 찾아낸 것도 있지만, 역시 007시리즈의 매력은 살인면허 소지자의 낭만적 액션이다.

62년 '007 닥터노' 이후 승진도 않고(?) 40년 가까이 줄기찬 지구수호의 길을 걷고 있는 영국 외무성 5급 공무원 제임스 본드. 그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19탄에 이르러서는 과거 낭만적이고 영웅주의적인 남성위주 이미지를 거의 걷어냈다. 첫째는 제임스 본드가 여자를 죽인다는 사실. 본드는 악녀 일렉트라를 단 번에 쏘아 죽여버린다. 그것도"나는 사랑한 적 없어"라는 매정한 말을 시신에 던지며. 또 여자와 밤을 새고 아침을 맞는 것도 19탄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이 처음이다.

본드의 카리스마 보다는 남성우월주의적이라는 여성계의 반발에 굴복한 것이다. 또 그동안 영국 외무성 MI-6 본부를 절대 떠나본 적이 없는 본드의 상관 M(주디 덴치)이 납치까지 당하는 것이나, 시리즈 2탄 이래 30년 가까이 본드에게 신무기를 제공했던 Q가 퇴장하는 것도 '007 언리미티드'에서 볼 수 있는 색다른 장면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제 궤도를 찾은 듯, 하지만 본드걸의 소피 마르소, 데니스 리처드는 부조화스럽다.

감독은 '붉은 사슴비''넬'의 마이클 앱티드.

원제 'The world is not enough'를 출처불명의 '언리미티드'로 개명한 것은 아무리 봐도 개악(改惡)이다. 12세 관람가. (18일 대구극장, 자유2관 개봉)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