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의 1999년이 저물고 있다. 지긋지긋했던 20세기였으므로 빨리 저물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그렇다고 21세기가 좋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20세기에 우리는 봉건과 반봉건, 식민통치와 독립운동, 분단과 전쟁, 독재와 혁명, 산업화와 인간소외를 거의 동시에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인류역사 5천년간의 각종 체제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노력한 20세기였다. 신분제도에서, 권위주의에서, 독재정치에서, 가부장제도에서, 무지와 빈곤에서, 제국주의에서,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에서, 국수주의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노력한 20세기였다. 그러나 계급문제나 통일문제처럼 미해결의 과제를 안고 21세기로 가야 한다. 거기에 20세기에 새로 대두한 문제가 추가되어 있다. 국가조직과 경제 올가미, 살인무기와 패권주의, 세계주의와 신자유주의, 환경오염과 생명공학 등 20세기가 만들어낸 신과제도 적지않다.
그런데 21세기는 20세기처럼 힘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리할지도 모른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총칼을 든 무인이 다스려 갈때 우리는 문인이 다스린 문치주의의 전통을 쌓았다. 때문에 문약했던 단점은 있었으나 교육열이 높은 장점을 가지게 됐다. 교육열이 높았으므로 식민지 폐허와 6.25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개발을 달성할 수 있었고 남들이 놀랄 정도로 IMF사태도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즉 '문치사회-교육열 .지식성장'의 구조적 특징이 총칼이 지배한 20세기에는 식민지로 전락할 정도로 불리했지만 지식이 지배할 21세기에는 유리하다는 말이다.
지식사회에서 문제되는 것은 지식의 도덕성이다. 고도의 범죄는 고도의 지식이 만드므로 21세기가 20세기 이상의 대참극을 불러올 가능성이 많다. 유전자 조작에 따라 인조인간도 나오고 우주인간도 나타날 터인데, 그때 인간의 길을 잊으면 엄청난 재난과 난장판이 연출되어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 그것을 막자면 무책임한 신자유주의와 실용주의에 함몰하지 말고 인문주의와 인문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 21세기에는 정보조직이 지배한다고 한다. 국가운영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한 시민단체가 참여한 직접민주제가 발달할 것이 예상된다. 정부는 시민단체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쓰러지고 만다. 정부는 모든 비밀을 공개당하게 될 것이므로 국가의 비밀이라는 것은 없어진다. 때문에 20세기의 대의정치 방식으로는 21세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부패한 정치인과 무력한 국회나 사법부를 보라. 20세기 방식의 정당정치나 대의정치는 선진국 몇나라외는 이미 빛을 잃고 있다. 그러므로 20세기형 선진국을 따라잡을 생각일랑 말고 시민단체의 참여에 의한 직접민주정치의 국가운영의 모형을 개발하여 선진국을 추월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럴때 '국민-시민단체-정부(정당)-시민단체-국민'이라고 하는 3중 구조에 의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방안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온 국민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이 되면 미국같은 대국보다 우리같은 작은 나라가 능률이 극대화되어 모범국이 될 수 있다.
새 시대에는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별도 영역이 없어질 전망이다. 거기에 세계시민 혹은 우주시민의 역할도 혼합된다. 따라서 국경선은 낮아질 것이고 세계 구석구석에 연결된 통신망 따라 세계적 시민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지난 11월말 WTO협상을 무산시킨 시애틀의 함성을 듣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는 1천개 정도의 시민운동단체(NGO는 2만개)가 있는 것으로 안다. 시민운동단체란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 같은 이익단체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같은 것을 말한다. 21세기에는 누구나 한 개 이상의 시민운동단체에 가담하여 기업체와 학교와 정부와 지방정부와 국회를 감시하고 지원하는 시민운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무능과 초국가적 기업의 반동, 즉 신자유주의의 난동을 막을 수 있다. 모두 시민운동단체에 가입하자.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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