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한잔-佛서 작품전 비디오설치작가 박현기씨

지문과 주민등록번호. 신분.체제.질서.명분.속박…. 이 둘이 상징하는 단어는 이처럼 다양하지만 분명 어떤 한가지 소실점을 향해 집중돼 있다.

비디오 설치작가 박현기(57)씨의 새로운 작품 테마는 지문과 숫자.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변해가고 있는 이 시대의 특성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 18일부터 2000년 2월말까지 열리는 프랑스 니스시립미술관 초대전에서 숫자가 찍힌 거대한 지문으로 구성된 비디오 작품 'INDIVIDUAL CODE'를 선보이고 있다. 현란하게 채색된 작가의 지문 소용돌이와 주민등록번호가 또다른 사람의 그것들로 바뀌어 가는 화면이 차갑고 비인간적인 미래사회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 거대한 대리석 위에 투영된 물의 이미지를 통해 동양적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현현(顯現)' 등의 작품도 함께 출품했다.

니스시립미술관측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발간됐던 그의 화집을 접하고 초대전을 제의하면서 이뤄진 이번 전시는, 그러나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지난 4월 서울 박영덕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전시, 피악, 쾰른 아트페어 참가 등 어느해보다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4개월전 내려진 위암 판정.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는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우리나라에 처음 '비디오 설치' 장르를 도입한 이래 국내에서 쌓은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 막 세계로 발돋움하려는데…"

부쩍 수척해진 박씨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런 아쉬움과 어떤 것도 억누를 수 없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니스 초대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얼마전 서울에 문을 연 SK 신사옥 로비에 백남준씨의 작품과 나란히 '현현'시리즈가 배치되기도 했다. 내친 김에 내년 3월부터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 본전시 특별코너에 서세옥, 곽덕준씨와 함께 출품할 예정이다.

"좌절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기적을 바랄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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