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벌계열 금융 '사금고화'실태

현대.삼성.SK그룹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특검 결과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벌소유 제2금융권 금융기관의 사금고화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그룹이 각종 한도 초과나 유상증자 참여, 유가증권 매매, 부당여신 등을 통해 계열사를 직접 또는 우회 지원한 규모는 삼성이 10조원(계열사 발행어음 매입한도 초과분 6조6천억원 포함), 현대가 2조6천억원, SK는 7천900억원에 달했다.재벌 금융계열사들은 단속을 아랑곳 하지 않고 모든 탈.불법 수단을 동원해 계열사간 이익을 주고받고 부실계열사를 떠받치는 젖줄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금고화 실태현대.삼성.SK그룹 금융계열사들은 법규위반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내부 부당지원을 일삼았다.

현대투신운용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3월 사이 고객이 맡긴 신탁재산으로 모회사인 현대투신의 채권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하는 방식으로 5조1천768억원을 거래, 2천33억원의 이익을 현대투신에 제공했다.

현대투신운용은 지난 3월에도 현대투신이 보유하고 있는 부도채권 및 기업어음(CP)을 시가가 아닌 장부가로 1천520억원어치를 역시 신탁재산으로 매입했다. 이 부실채권은 바이코리아펀드 등에 편입돼 고객에게 피해가 전가됐을 가능성이 높다.현대투신운용은 이같은 사실이 적발되자 일부 거래를 원상회복했으나 고객이 맡긴 돈을 고객을 위해 운용하지 않고 모기업인 현대투신의 부실해소를 위해 투입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삼성 금융계열사들도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한도를 넘는 연계콜지원, 유가증권 인수 등의 직접적인 방식을 동원해 계열사를 지원했다.

삼성생명은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삼성차에 4천200억원을 신용대출했고 삼성캐피탈과 삼성카드는 어음할인 방식으로 1천억원을 지원했다. 또 지난 97년 4월이후 2천408억원 상당의 신축공사 23건을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에 수의계약으로 맡겼다.삼성생명투신운용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 사이 삼성증권과 삼성투신증권의 상품유가증권 7천920억원을 신탁재산으로 취득했고 삼성투신운용도 작년 3월부터 지난 3월 사이 삼성증권의 상품 유가증권 4천470억원어치를 고객자산으로 인수했다.

SK투신운용도 지난 5월부터 10월 사이 고객이 맡긴 자금으로 SK증권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CP 등 43개 종목 3천70억원의 유가증권을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도를 초과한 계열사간 콜자금 지원도 이들 재벌들이 상습적으로 활용한 수법의 하나였다.

삼성증권은 97년과 98년 계열사 어음 발행한도를 각각 3조3천억원 초과 취득했고 현대투신운용은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현대투신 등 3개 계열사에 연계대출 한도를 초과해 신탁재산에서 최고 1조748억원의 콜론을 제공했다.

◇개선 가능할까금감원은 4대 재벌소유 제2금융사의 사금화가 심각하다고 보고 내년부터 계열 금융사에 대한 연계검사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해마다 4대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한 연계검사를 실시해 위법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없이 엄정하게 처벌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외이사제도를 강화하고 감사위원회 및 준법감시인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배구조도 개선했다. 투신사.보험사의 자기계열 유가증권 투자 또는 여신한도를 축소하고 보험사에 거액 신용공여한도제도를 도입해 고객재산이 대주주나 계열사의 이익 추구에 전용되는 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됐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적 조치가 재벌의 제2금융 사금고화를 어느 정도까지 차단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단속이나 처벌에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특검에서 드러났듯 금감원은 재벌 그룹 금융계열사가 엄청난 내부지원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적발하고도 고발은 한 건도 없었다. 현대 금융계열사 일부에 대한 검찰통보와 대표에 대한 직무정지를 빼면 삼성이나 SK그룹 금융계열사 경영진에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하지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책경고나 주의적경고가 남발됐지만 이들 회사가 민간기업이라는 점에서 신분상 불이익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계열 금융사를 사금고로 활용하는 경우 해당 금융사 경영진이나 대주주에 대한 문책 강도를 높여 사법처리의 범위를 넓히고 경영진의 경우 더 이상 같은 재벌 계열사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이나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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