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어라해도 지난 30여년간 남한에서의 반군사독재항쟁, 인권운동, 사회정의투쟁, 민주운동, 노동운동은 정당했다. 보다 바람직한 사회건설을 위해서는 이러한 운동, 항쟁,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끝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놀랍고도 이상한 일은 김일성 공산정권의 무자비한 독재와 김정일의 가혹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항쟁은 물론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때로는 그 주체들이 찬양의 대상, 그들의 정권과 그들 지배하의 사회가 흠모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모순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첫째의 설명은 운동권의 타도대상이었던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을 국시로 했으며, 북한정권의 이념인 사회.공산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반공이념을 구실로 정권을 유지하고, 반공을 구실로 수많은 부정, 부패, 불의, 탄압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은 곧 남한의 반공정권의 정당화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사유의 오류가 끼어있다. 나의 적의 적이 필연적으로 나의 동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도 똑같이 나의 적이 될 수 있다. 반공정권의 독재와 불의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공산정권의 독재와 불의도 똑같이 규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번의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운동권이 취한 일관성 없는 태도는 이념에 의한 현실의 왜곡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운동권의 지배적 이념이 사회.공산주의적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때, 적어도 명목상 사회.공산주의를 국시로 하는 김일성.김정일 정권을 비판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론상의 사회.공산주의는 어떤 개인이나 특정한 계층에 의한 지배나 착취가 없이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이상으로 한다. 양심있는 인간이라면 사회.공산주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사회.공산주의를 자처하는 권력이 과연 말대로 사회.공산주의적이냐는데 있다. 대답은 명확하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권과 사회는 역사상 아직은 어디고 존재하지 않았으며, 붕괴 이전의 소련과 현존하는 중국은 왜곡된 사회.공산주의적 정권과 사회를 대표할 뿐이다. 꼼꼼히 들여다 보면 김일성.김정일의 세습정권은 가장 왜곡된 사회.공산주의를 대표한다. 이념의 허상에서 잠을 깨어, 냉철한 이성의 눈을 뜨고 사실을 사실대로 봤을 때만 비로소 참다운 사회.공산주의의 이상적 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다.
더이상 이념의 환각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더이상 감출 수 없고, 더이상 눈감을 수 없으며, 더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다. 시방 북한에서 수백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수십만의 굶주린 아이들이 마른 오징어같은 모습으로 사선에서 방치된 채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집과 고향을 버린 수많은 탈북자들이 냉담한 이국땅에서 당국의 눈을 피한 채 인신매매되거나 거지처럼 뒷골목을 숨어 떠돌며 허허벌판을 헤매고 있다. 수만, 아니 그 이상의 정치범들이 자살할 자유도 없는채 수용소에서 죽어가거나 목숨을 겨우 잇고 있다한다. 북한과 북한동포들의 이런 사태는 이미 여러 통로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두 눈으로 목격되었고, 적지않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었으며, 적지않은 영상매체를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 이념의 색안경을 쓰지 않은 어린애의 눈을 보니 환상적 옷을 걸친 김일성.김정일이라는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다.
북한의 현실을 사실대로 직시함으로써 기아로 죽어가는 북한동포들에게 식량이 공급되어야 하며, 북한의 정치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하나라도 더 구출해야 하고, 냉담한 이국의 벌판에서 끼니를 찾아 짐승처럼 헤매는 탈북동포들에게 구호의 손길이 가야한다. 그것은 모든 이념을 초월한 동포로서, 인류로서 우리가 맡아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한민족의 밝은 21세기는 위와 같은 사실을 인식했을 때만 희망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