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구에 계시는 시인 한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늘 밤 달이 지구에서 가장 크게 보인다고 하니 꼭 그 달을 바라보세요"라고 주문하시곤 환하게 웃어 주셨다. 마침 그날은 호남지역에 폭설이 내린 뒤였고, 연구실 창밖은 여전히 백설이 난분분했으며 도저히 밝은 달을 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전화 한 통으로 그날 하루 시작이 즐거웠다.
이상한 일이다. 'TK'하면 대구·경북의 이니셜이면서도 그 지역의 시인이 떠오르는게 아니라, 그 지역의 친구가 떠오르는게 아니라, 그 지역의 풀과 바람과 하늘이 떠오르는게 아니라, 'TK'하면 왜 그런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냄새만 풍긴다. 적어도 나의 좁은 소견머리로는 정치하는 사람도 세 부류로 나누는 버릇이 있으니, 가장 으뜸이 정치인이요, 다음이 정치가요, 제일 형편없는 부류가 정치꾼인데 정치꾼은 곧 사기꾼·협잡꾼·모사꾼에 다름 아니다.
나는 평소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동서로 갈라놓은 장본인이 바로 이 정치꾼들임을 확신하고 있다. 선거때만 되면 살아나는 망령이 지역감정이고 색채 이데올로기라면 이 모두를 제조하고 농단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꾼들이고, 지난 수십년간 이 나라엔 정치꾼들이 난장을 이루는 바람에 아직도 우리나라는 정치에 있어서 만큼은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후진국을 20세기 유산으로 남겨준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그것은 'TK'의 정치인이 아니고 'TK'의 정치가도 아니고, 오직 'TK'의 정치꾼에게 마땅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TK'의 정치꾼들이 총칼로 정치력을 발휘하며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위세를 부릴때, 호남 출신의 관료들은 본적을 바꾸어야 했고(비록 일부이지만), 승진은 고사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했으며(실제로 내 제자는 대구에서 사표를 썼다), 심지어 딸아이가 울면 전라도로 시집 보내버리겠다고 윽박지르면 그 딸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하니(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시집 온 모 대학 교수 사모님의 말씀이다), 이 사소한 것들마저 'TK'의 정치꾼들이 만들어 놓은 조화신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난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당시 광주에서 살며 직접 체험했던 나의 이야기를 20년이 된 지금도 믿으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믿고 싶지 않을 터이겠지만 엄연한 사실도 사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식 자체가 바로 'TK'정치꾼들이 심어놓은 씨앗이지 않겠는가.
어디 그 뿐인가. 경제적 우열, 문화적 차이, 사회적 위상 등 어느 것 한가지 올바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평등 한 게 없다. 공유한게 없다. 그럼에도 모처럼 참으로 전세계가 놀랄 정권교체로 민주주의의 참뜻이 이루어졌음에도 이제는 호남사람들이 또다시 역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야당은 무슨 일만 생기면 경상도에 가서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며 선동함으로써 이간질하는데만 정신이 없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적어도 정치꾼들이 판을 치는 정치에 있어서는 말이다.이제 새 천년이 시작된다. 'TK'는 정치꾼들의 이니셜이 아니라 모든 대구·경북 땅에 살고 있는 선량한 시민들의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 엊그제 이곳 목포에까지 밤 하늘의 둥근 달을 함께 쳐다보자고 전화해준 시인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내가 대구에 가서 시낭송을 할때 그토록 따뜻하게 대해준, 색소폰 가락에 밤새워 함께 마셨던 그 술잔의 온기로 불리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TK'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정치꾼들을 우선 과감히 퇴출시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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