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밤만 더 자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가 본데, 마음은 미동도 않는다. 해가 바뀌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갈라놓은 천년과 천년의 경계선에 매여 휘둘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기만 하면 개벽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듯 야단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종교나 이념, 혹은 전도된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지 않고, 그 와중에 빈곤과 질병, 기아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당하고 있다. 정녕 우리가 부채(負債)의식 없이 새 천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문제들을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보편적 세계시민이니 인류애 따위의 거창한 수사(修辭)를 들먹일 필요없이 당장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되돌아 보자. 아직도 풀지 못한 분단의 숙제가 민족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혀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것만이 무조건 옳다고 하면 남의 것은 그른 것이 된다. 그른 것은 없어져야 하니, 둘이 서로 내 것만이 옳다고 하면 싸움이 일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와중에서야 피아(彼我)가 생명을 놓고 도박을 하지만, 한 시대가 끝나고 나면 결국은 지우기 힘든 생채기로 남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편 가르기는 다 사람이 자기 중심에서 만든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저러한 싸움은 모두는 아닐지라도 그런 허망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제는 '오직 이것만이 진리'라는 속 좁은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갖 이념이나 종교도 궁극적으로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인류의 삶에 화해와 평화와 사랑과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의해서 인간이 지배되고, 싸움이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난다면 도대체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새 천년,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배척하고 미워하기 보다는 다른 것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그리하여 다양성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김성범.정동서당 훈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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