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전 과정은 불균형이 균형을 대체하고, 무질서가 질서를 대체하고, 불안정이 안정을 대체하면서 세계는 패권적 갈등의 새로운 라운드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인류가 완전히 망하거나 또는 평화적 변화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개발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세계 리더십의 바통은 로마에 의한 1천년간 세계 지배, 14세기에 오스만투르크, 15세기에 포르투갈, 16세기에 스페인, 17세기에 네덜란드, 18세기에 나폴레옹의 프랑스, 19세기에 영국, 20세기에 미국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생노병사와 마찬가지로 패권 국가의 흥망성쇠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이요, 법칙이라면 21세기를 지배할 패권 국가는 과연 어느 나라인가?
미국은 대륙규모의 파워, 엄청난 천연자원, 잘 교육된 인구, 군사력, 경제력 측면에서 라이벌 국가와의 현저한 차이, 정보, 인터넷, 순수과학 등을 고려할 때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타국가에 쉽사리 내줄 수 없다고 보여진다. 인류역사를 통해 하나의 제국이 정치·경제·군사·문화·외교에서 이렇게 팽창하여 전 세계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엘베강에도 호르무즈해협에도 삼팔선에도 미군이 있으며 바다에 떠있는 미군만 6만5천명이다. 과거의 패권국가는 누가 자기를 따라오는지 어깨너머로 보아야 했다. 2000년의 세계는 과거와는 다르다. 미국의 패권적 계승자는 없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합친 어떠한 도전도 앞으로 30년간은 미국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이 다음 세계의 강대국으로서 미국을 대신하게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세계 제1의 채권국가, 군사관련기술 등 인상적인 여러 힘을 보유하고 있으나 군사력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없다. 정보, 인터넷 부분에서 일본과 미국의 격차는 30년이상 벌어져 있다. 낙후된 금융구조로 미국의 세계금융지배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정치문화적으로 폐쇄적이고 고립적이며, 미국의 민주주의 이념처럼 세계를 이끌 보편적 이데올로기가 없다. 세계정치를 이끌 역동적 리더십이 없으며 일본은 정치지도자의 안내없이 작동되는 자동기계와 같다.
유럽은 미국에 내주었던 세계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1958년에 탄생한 유럽연합이 궁극적으로 경제적·정치적 통합을 이룰 수가 있다면 3억3천만명의 인구, 자원, 경제, 기술, 군사면에서 다음 세기가 유럽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투자, 미국이 소비, 소련이 무기에 전문화했다면 유럽은 이 세가지 모두에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유럽통합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경제적 통합은 가능할 지 모르나 국가의 주권마저 양도해야 하는 정치적 통합은 깨어져야 할 환상인 것이다. 유럽연합은 경제적 거인, 정치적으로 피그미, 군사적으로는 아직 유충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도 유럽통합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통합을 격려해줌으로써 과거의 보호자에게 등을 돌리고 위험하고도 불공정 한 경쟁자로 부상하여 프랑켄스타인의 괴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이 여전히 막연한 것이라면 21세기의 주도적 세력으로 유럽을 생각하는 것 역시 과장된 일이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서 지금은 군사적으로 약하고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없지만 30년 뒤에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2030년 쯤에는 미국과 함께 2개의 세계 최강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과 민족주의에 젖어있는 중국은 어쩌면 미국에게 No라고 말할 수 이쓴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홍콩과 마카오를 획득한 중국은 아시아에서 지배세력인 미국을 대체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은 능력을 감추고 시간을 벌고 있다. 중국은 전술적으로 영리하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국을 군사강대국으로 필연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세계의 미래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탈냉전후 21세기 세계정치의 향방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데서 발생하는 세계적 지위를 두고 벌어질 갈등, 아시아에서 지역적 영향력을 놓고 벌어질 갈등, 세계파워로서 부상하는 중국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견제와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악동의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도록 미국과 중국사이의 상호의존과 협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20세기에는 1·2차 세계대전에서 내일 빼앗길 줄 모르는 몇 미터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 만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갔다. 21세기에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정의·질서·안정·평화 등의 세계가 실현되기를 희망해 본다.
부산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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