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새 '천년' 새 아침에

동해에 솟아오르는 저 태양은 영겁을 두고 떠오르는 어제의 그 '해'일 뿐이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어쩐지 더욱 찬란해 보이는 것은 오늘 이 아침이 새 천년을 맞이하는 첫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에 걸쳐서 삶을 누리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천년을 걸쳐 새 밀레니엄에 저 태양을 또다시 맞이할 수 있다니 어찌 뭉클한 감회가 없겠는가. 지난 천년동안 이 나라는 어쩔 수 없이 세계사(世界史)의 변두리를 맴도는 주변 국가일 뿐이었다. 인류역사의 큰 흐름에서 한 발 물러선채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만족해야 했고, 900여차례가 넘는 외침(外侵)속에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더구나 20세기의 우리 역사는 '한(恨)의 역사'라 해도 좋을만큼 고통스러웠다. 20세기의 첫 경험을 남의 식민지로 시작했고 해방과 6.25, 4.19에서 군사혁명으로 점철된 현대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왠지 새 천년에는 더 이상의 서름과 오욕은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이 아침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것 같다"며 막말을 하는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지금 이순간 IMF위기 또한 잘 넘기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의 대륙을 누비고 있고 새 시대의 테마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우리는 선전(善戰)하고 있다. 정치가 다소 흔들리고 빈부와 노사의 갈등을 비롯한 현안의 문제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맨주먹으로 경제 기적을 이룩한 우리들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이쯤이야 거뜬히 풀어나갈 것만 싶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 벽두에 맞이하는 저 태양에는 은둔하던 배달겨레가 힘차게 날개짓 하며 세계의 중심국으로 비상할 것 같은 희망의 서기가 서린 것처럼만 보인다. 새 천년 새 시대는 힘이 정의인 시대에서 정의가 힘이 되는 시대로 바뀌기를 기원한다. 또 모든 사람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정직한 사회가 열리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 모두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천년이 바뀌는 오늘 한번쯤 생각해 봄직도 하지않은가. 7천만 겨례가 한덩어리 되어 화려하게 용솟음치는 그날이 오기를 경진년 용띠해 아침에 다시한번 염원한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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