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된 시를 읽으면서 상향평준화 현상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2천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가운데 예선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수준작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어려움이 따랐다.
김미영의 '보영약국은 따뜻한 말을 조제한다'는 일상사의 이면을 신선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으나 '소설적'인 묘사에 그쳐 깊은 울림이 아쉬웠다. 이계희의 '볕이 잘 드는 마을'은 잔잔하고 단단하게 세상살이의 고랑을 파고 일궈내는 감수성이 돋보이지만 삶을 장악하고 뭉뚱그려내는 힘이 부족하다. 이별리의 '철길 사이'는 언어와 감정의 절제, 한층 높은 도약이 요구돼 좋은 시의 문턱에 머문 느낌이며, 유가형의 '기억의 상자에 빠집니다'는 발상이 참신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은 신민철의 '앵무새와의 대화'와 김성용의 '의자'였다. '앵무새와의…'는 독특한 시각으로 삶을 액자 속에 담아내는 기교가 능숙하고 언어의 행진이 현란하다. 하지만 말을 너무 이리저리 돌리는 바람에 삶에 대한 인식의 바닥이 얕아지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재미있는 언어 유희와 세련된 감수성이 장점이자 약점을 만들고 있는 경우지만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보다는 삶에 더 기대고 삶을 더 깊이 들여다 보기를 기대한다.
'앵무새와의…'에 비해 '의자'는 완성도와 세련미가 떨어진다. 거칠고 튀며 난폭하다. 전체적인 숨고르기와 후반부의 마무리도 허술하다. 파괴적이고 현대적인 것까지 유형화되는 이 시대에 이런 유형의 시가 일종의 '상투성'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의자'를 통해 우리의 삶이 사로잡힌 수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파괴적이지만 역동적인 이미지로 삶의 '굳은 살'을 떨궈내는 힘을 지니고 있어 호감을 갖게 한다. 끊임없이 관습과 고정관념, 상식에 도전하는 패기와 힘을 견지하기 바라며 당선작으로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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