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일 어협 1년 동해안은 지금...

올해 1월22일 발효된 신 한.일어업협정은 우리 어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졸속으로 이루어진 협상 결과에 어민들은 분노했다. 일본 수산청이 빈틈없는 준비로 만점을 받았다면 벼락치기 준비를 한 우리 해양부는 0점이었다. 일본 오키군도를 비롯, 일본 해역에서 잡아오던 대게, 고동, 가자미, 오징어등 고급어종을 잡지 못하게 됐다. 1년이 다된 지금 어민들의 생계는 말이 아니다. 너도 나도 어선 감척을 신청을 해놓고 있다. 하지만 고기잡이로 살아온 이들에겐 전업이란 또다시 'IMF 터널'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런 일이다. 신 한.일어업협정 1년을 맞아 포항, 영덕, 울진등 경북동해안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 폐항 위기에 놓인 구룡포항

지난 23일 오전 포항 구룡포항 옆 활어위판장 공터.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번째 '구룡포 특산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읍사무소와 구룡포 청년단체들이 이곳 특산품인 대게, 오징어, 과메기를 외지인에게 널리 알려 지역 경제를 살려보자는 뜻에서 개최했다.

700여명의 참석자중 초청 내빈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곳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과메기 엮기-벗기기등 각종 경연대회에 참가한 읍민들은 물론 특산품 판매코너 상인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최태윤(60) 구룡포 채낚기 선주협회장 직무대행은 "감척 신청한 배의 보상금이 나오면 그 다음은 무얼할 지 아직 계획이 없다"며 "대부분의 선주들도나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이곳 출신의 서재원(42) 포항시의원은 "어자원 부족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에 신 한.일어업협정은 지역 경제를 회생불능 상태로 몰고 있다좭며 "축제를 기획한 것도 어떻게든 지역경제를 살려보자는 고육지책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올 1월 신 한.일어업협정 발효 이후 1년이 다 된 지금, 어민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최회장은 "감척사업에도 불구하고 지금 항포구에는 배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매년 고기씨는 말라가는데 정부는 어민들의 요구대로 배만 많이 늘려줬습니다. 이 때문에 신 한.일어협이후 일본 EEZ내 입어가 불가능하자 어민들은 좁아진 어장내에서 서로 물고 뜯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어자원 고갈에 따른 장기적 자원 보호 대책보다는 마구잡이로 선박 허가를 내 준 결과였다.

구룡포 특산품 축제가 열리고 있는 이날은 일본 동경에서 있은 내년도 한·일어업협정의 실무회담이 타결,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언론들은 "어획 할당량은 올해보다 다소 줄었지만 입어 절차 개선 등 조업조건이 크게 개선, 우리측으로서는 유리한 협상 결과"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황금어장 다 잃은 마당에 이제와서 입어절차 조금 개선되었다고 '성공적 협상'이라고 발표하는 해양부나 곧이 곧대로 보도하는 언론이나 똑같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구룡포는 지금 폐항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 경제도 밑바닥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양식업''해안관광자원 개발''새로운 상품 개발''어자원 보호'등으로 활로를 열어보자는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엄청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 연안 어자원 고갈

한.일어협이 몰고온 파장은 대게 집산지 영덕군 강구항의 대게 위판량을 보면 그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올해 강구수협에서 위판된 대게는 9천89㎏. 대략 9t이 조금 넘는다. 위판액은 1억258만원이다.

이는 지난해 위판량(17만6천905㎏)과 위판고(24억6천421만원)에 견주면 양은 20분의 1, 금액도 20분1에 못 미칠 정도로 줄어든 것. 사실 지금까지 영덕대게로 알려진 대게는 대부분이 일본 오키군도 등 일본 연안에서 잡아온 것이다. 그러나 신 한.일어협 이후 출어를 못함에 따라 당연히 대게 구경하기가 힘들게 됐다. 영덕 연안에서 잡히는 대게는 그 어획량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 이제 '대게 명산지'라는 이름은 옛이름으로 남게 됐다.

사정이 이러니 대게 저자망 어선 대부분이 감척 신청을 했으며 1~2척만 연안에서 대게를 잡고 있으나 어자원 고갈로 종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같이 대게가 귀해지자 가격도 크게 올랐다. 종전에는 횟집에서 4~5만원이면 사먹을 수 있었으나 요즘은 10~13만원은 족히 줘야 먹을 수 있다.

40년 동안 대게를 잡아온 95해영호 남두성(59) 선장은 "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감척보상금을 받으면 빚을 정리한 후 적은 배를 구입할 생각이지만 쉽게 될 지 모르겠다좭고 말했다.

▨ 설비 놀라는 수산물 가공업체

신 한.일어협의 파고는 동해안 수산물 가공업체들에게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울진 후포에 있는 ㅅ기업. 한때 200여명의 종업원들이 게살을 생산,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나 요즘은 기계를 돌리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 오키군도등에서 홍게를 잡아오던 통발어선들이 신 한.일어협이후에는 출어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이 홍게의 최대 서식지인 독도 인근 한.일 공동수역에 광케이블을 매설하면서 우리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게통발 어구를 마구 훼손, 조업차질을 빚어면서 어민들이 더욱 분노했다.

ㅅ기업 김모(38)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연어등 수입원료로 근근히 버티고 있으나 감척선박이 늘어나는 만큼 원료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종업원을 절반 가까이 감축한 ㅌ수산 역시 원료난이 가중되자 내년초 다시 감원을 단행할 계획이다.

이처럼 원료난이 심해지자 휴업을하거나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죽변수협 이길득 대리는 "수산물 반입량 감소로 보관율이 급격히 떨어져 대부분의 업체들이 30~40%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세 냉동 업체들이 무더기 도산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어업협정이 맺어진 지 1년. 어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위판물량 감소에따라 중매인.수협.수산물 가공공장등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鄭相浩.林省男.黃利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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