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21세기 사람

나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성미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온통 박수를 치고 찬사를 늘어놓을 때도 그 일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같이 흥분하지 못하고 괜히 수상쩍어하며 청개구리처럼 삐딱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습성이 그것이다. 그런 성미탓인지 '모래시계'라는 TV 극영화나 '쉬리'같은 영화도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그저 식어빠진 팥죽 먹듯 비디오로, 그것도 2배 재생시키는 방법으로 대충 훑어보고는 무덤덤하게 넘기고만 기억들이 있다.

지난 해 내내 대희년이니 뉴 밀레니엄이니 하며 세상이 엄청나게 바뀔 듯이 떠들어댈 때, 또 Y2K라는 생소한 단어로 금방이라도 인류의 대재앙이 닥칠 듯이 호들갑을 떨며 미리 돈을 찾아두고 생필품을 사재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도 '뭘 저리 야단스레 구누'하고 오히려 이상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나도 점점 꼭 그럴 것 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은 왜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두 세기에 걸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일게 아닌가. 물론 20세기, 21세기라는 시대적 설정이 인위적으로 만든 수치상의 기호일 뿐이긴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가 상징체계임을 감안한다면 세기 전환의 순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적잖게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이 시대는 천재지변으로 화를 당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단 하나의 작은 실수가 엄청난 재앙으로 연결되는 고도의 문명시대이므로 재난에 대비하는 것 또한 마땅히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일 것이다.

또, 문득 나자신으로서는 인생의 거의 절반으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생각이 미치자 무턱대고 덤덤한 채 할 수 만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창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이니 뭐니 어려운 말로 치장하지 않더라도 절반의 인생을 사는 방법은 앞의 절반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 섞인 각오도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젠 '넌 영원한 20세기 사람'이란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권오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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