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된 민·관합동 시무식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 화해와 협력관계촉진에 비중을 둘 방침임을 밝히고 구체적으로는 △인도적 지원 지속 △상호이익이 되는 경제적 교류 실시 △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을 제시했다.
김 대통령은 또 지난 98년 2월 취임사에서 천명한 대북 3원칙, 즉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을 해치지 않겠다, 남북은 서로 화해 협력하자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 가운데 경제 교류에 대해서는 '남북경제협력 공동체' 구성을 위한 국책 연구기관간 협의를 가질 것을 제의해 앞으로 북한측의 반응이 기대되고 있다. 이 제의에는 '국책 연구기관간 협의'라는 남북간 협의 대상이 적시돼 있어 남북간에 이미 모종의 물밑 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북한 역시 신년사를 대신해 지난 1일 발표한 당보(노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 3개 신문 공동사설에서 "올해 우리가 보다 큰 힘을 넣어야 할 전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이라면서 "우리의 경제형편은 의연히 어렵다. 모든 부문에서 실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례적으로 경제난을 인정하면서 경제부문의 실리 챙기기를 강조했다.
남북한의 신년사는 상호 이익을 보장하는 경제협력에 관한 한 '공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경제협력 공동체' 구성 제의가 겉모양은 똑같지 않겠지만 남북간 경제협력이 실질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될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불러 일으킨다.
남한측이 정부 당국을 내세우지 않고 '국책 연구기관'을 내세워 접근한 것도 현재 당국간 접촉을 극도로 기피하는 북한 당국을 감안한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88년 7·7선언 이후부터 경제공동체 형성이 계속 진행돼 왔으므로 이번 신년사 제의를 계기로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료, 식량, 의약품 등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북측은 지난해 비료지원 처럼 드러내놓고 반가워하지는 않겠지만 내심으로는 적극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같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이나 최근 불거진 김양무 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의 방북치료 등의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은 남북한 당국이 우선순위를 달리 매기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 반면에 똑같이 인도적 사안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남북간에 협의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남북 당국간의 직접 대화 접촉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으나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도 '자주'와 '외세'에 대한 판이한 시각 차이 때문이다.북한의 신년사는 "남조선 사회의 자주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자주가 없는 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며 '남조선의 자주화'를 중요하게 여겼으나 김 대통령의 신년사는 '자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평화적 민주적 통일'만을 언급했다.이는 지난 72년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천명되고 그 후 20년만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다시 확인된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 조국통일 3원칙과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북측으로부터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북측이 지난해 2월 제시한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의 선행사항에 대해서도 김 대통령의 신년사는 아무런 언급없이 지나쳤다. 북측은 선행사항을 제기한 뒤 지난해말까지만 해도△반북 외세와 공조파기 및 합동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애국 단체 및 인사의 자유로운 활동보장 등 이들 3개 선행사항을 상기시키면서 남측이 오히려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극렬히 비난했었다.
이렇듯 '원칙'에서는 아직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김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포용정책', '햇볕정책' 등 그 동안 북측으로터 심한 반발을 샀던 용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할 것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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