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새 천년 머리에 생각하는 화두

우리는 새 천년을 화려하고 떠들썩한 축제와 더불어 맞았다. 일부 변경선 가까이 있는 남태평양상의 한 섬에서 출발한 새 천년의 화려한 축제는 서사모아 섬의 일몰을 맞으면서 대단원을 맺었다. 그리고 TV와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매체는 다가올 새 천년을 장밋빛 예측들로 메우고 있다.

디지털시대인 새 천년은 가상공간(cyberspace)이 지배할 것이기에 우리는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하루 빨리 새로운 게임 룰에 적응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는 얘기, 곧 완성될 인간의 유전자 지도는 인간의 복제는 물론 각종 기관이나 장기의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이보그(cyborg=cybernetic organism) 시대에 진입하여 인간의 초능력과 불로장생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얘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새 천년이 되면 빈부 격차의 악화, 도시에의 인구집중, 새로운 질병의 발생, 기후 등 환경조건의 이상현상이 첨예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장밋빛 예측의 한 구석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사실 저무는 천년과 새로운 천년의 구획은 종교적 의미를 갖는 서양의 종말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첫 천년의 고비와는 달리 이번의 새 천년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넘어선 자본주의의 전폭적 승리로 준비되었기에 그 함의가 크게 달랐다. 거기다가 첨단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이 합세하여 인간의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새 천년의 앞날이 장밋빛으로 보이면 그럴수록 장밋빛 꿈에 넋을 빼앗기기 보다는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기울인 인간들의 노력의 저변을 새삼 상기할 것을 이 새 천년의 벽두에 화두로 제기해 본다. 우리는 자주 인간의 지능이 성취한 엄청난 결과에 놀라면서도 그것을 만들어 낸 그 뒷면의 숨은 노력은 곧잘 지나치곤 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가상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만 이 가상세계의 수많은 정보 가운데서 우리가 채택하고 다운로드하는 정보는 우리 자신의 상식과 교양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고 있다. 우리가 DNA를 발견하고, 이제 유전자 염색체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탄탄한 기초과학의 발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첨단 학문이나 기술이 그 위세와 영광을 더해가면 갈수록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이들 첨단학문과 기술의 바탕이 되는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유전공학의 발달이 1930년대에 쓰여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혜가 담긴 문학과 역사, 철학의 공부는 새삼스런 중요성을 갖는다.우리는 새 천년 벽두, 소위 '전문가'들이 정보, 통신 등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개인이나 조직, 국가의 부의 증식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주장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신지식'의 개발이 절실하다는 얘기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첨단산업이나 신지식도 결국은 농사짓고 공장을 돌리는 것과 같은 1차, 2차 산업의 발달 없이는 모래 위의 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30년 사이에 산업화를 수행하여 OECD국가의 반열에 끼이는 발전을 이루어 왔다. 반도체나 자동차공업 등을 통해 산업의 선진화를 이루고, 인터넷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디지털시대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열기가 새 천년을 여는 지금 요란하다.

그러나 이같은 첨단산업이나 학문을 향한 열기는 결과적으로 기초산업이나 학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에 우리들의 미래가 반드시 밝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동차나 컴퓨터, 그리고 각종 첨단 전기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들 상품은 결국 마지막 손질을 소홀히 한데서 그것의 훌륭한 상품가치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기에 화려하고 떠들썩한 이 새 천년의 벽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침잠하여 우리의 근본을 되돌아 보는 삶의 자세라 하겠다.

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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