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은 뉴밀레니엄 첫해이자 광복 55주년을 맞는 올해 조선족들의 새 천년 맞이와 중국의 고구려 유적지 훼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팀을 파견했다. 이번 취재기를 상'조선족들의 백두산 해 맞이 뉴밀레니엄 축제', 하'훼손되는 우리 유적'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연변자치주와 중국 길림성 관광협회, 연길시 공산당이 공동 주최한 백두산 뉴밀레니엄 축제는 지난 31일 오후 7시부터 막이 올랐다. 천년의 마지막 밤은 흥겨운 놀이로 보내고 새로운 천년의 해돋이를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천지에서 맞는다는 것이 이 축제의 취지. 연변자치주 및 공산당이 중국은 물론 내몽골,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과 중국인들의 화합을 위해 마련했다.
조선족들을 아우르지 않고는 이민족 통치가 어렵다는 것을 중국 당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심 양면의 지원이 잇따랐다. 길림성 성주가 천지에 이르는 등산로 눈 제거 작업을 지휘했을 정도였다.
고위인사로는 연변자치주 부주장, 연길 공산당 제1부서기, 길림성 관광협회장, 한국측에서는 윤상웅 자민련 정책위부의장(대구 동구을지구당 위원장)이 참석했다.연변을 주무대로 한 가수들의 한국. 중국 노래와 사물놀이패들의 공연이 이어지고 참석한 1천여명의 관중들과 출연자들이 어깨춤을 추며 하나가 되었다. 당초 공연은 호텔 야외 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기온이 크게 내리는 바람에 실내 공연으로 대체됐다.
밤 10시. 공연을 마친 관객들과 출연자들은 눈밭에 설치된 바비큐 파티장에서 백두산 장작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여흥을 즐겼다. 끝이 뾰족한 긴 나무막대에 생고기를 매달아 타오르는 불길에 구워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영하 20도 정도의 추위에도 사람들은 흩어질줄을 몰랐다. 연길에서 왔다는 치과의사 석영기(37)씨는 "한민족이 하나되고 중국인들까지 껴안는 정말 멋진 행사"라고 감탄했다.
새 천년이 30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행사 주최측과 참석자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백두산 등정길에 눈이 쌓이고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강풍이 불어 등반이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31일 오후에 출발한 선발대로부터 '가능하면 올라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부득이 천지에서의 천년 축제를 취소하고 백두산 온천 부근에서 간이 축제를 연단다.
그러나 새 천년 일출을 산 아래에서 맞을 수는 없는 일. 취재팀은 가이드만 붙여주면 우리만이라도 올라가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1천여명의 참가자들 가운데 200여명도 등반을 고집하고 나서면서 주최측은 '사고가 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출발에 동의했다.
취재팀은 등산로 11km를 4시간 정도 부지런히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새벽 2시에 호텔을 나섰다. 주최측이 전날 장비를 동원, 등산로의 눈을 치웠는데도 발목 위까지 눈에 빠졌다. 그렇게 4km쯤 올라가니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반면 등산로의 눈은 거의 없어졌다. 워낙 바람이 세기 때문에 중턱을 넘어서면 눈이 쌓이지 않는단다.
올라가는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가이드는 아직 절반도 못왔으니 포기할 사람은 포기하라고 했다. "더 이상 올라 가다가 포기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면서.
1시간 정도 지나자 입김에 안경이 얼어 붙어 앞이 안보였다. 안경을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고개를 떨군 채 땅만 보고 걸었다. 마스크는 얼어붙었고 장갑도 도움이 안 됐다. 동료들과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점점 칼바람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봐서 천지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또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천지에서 불과 몇백m 떨어진 기상관측소 겸 대피소. 불을 피우는 듯한 매케한 연기 내음이 얼마나 반갑던지.
먼저 도착한 사람들 틈새로 들어가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무섭게 다시 천지로 올라갔다. 사방 막힌 곳이 없는 천지는 인간의 근접을 용납하기 싫은 듯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을 쏘아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짙은 안개와 구름이었다. 천지에서 새천년 일출을 맞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달려왔는데 방해물이라니. '천지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복권 당첨보다 어렵다'는 현지인들의 말도 취재팀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야속했다. "10초라도 좋으니 천지의 모습과 해돋이를 촬영하게 해주십시오" 천지신명께 호소했지만 무위였다.
그러나 앞이 안 보인들 어떠한가. 끝까지 정상에 오른 100여명의 사람들은 천지는 내려다 보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호수가에 둘러섰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기도를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카메라 배터리가 얼어붙어 작동이 안되자 그 추위에 외투를 풀어제치고 품속에 카메라를 녹였다가 찍고는 다시 넣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새 천년 첫날 새벽 모습을 담았다.
비록 일출은 잡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새 천년 첫날 해맞이 등정에 성공한 유일한 취재팀이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전날 축제를 취재했던 연변TV도 추위 때문에 백두산 일출 취재를 포기했는데 한국에서 날아간 우리가 국내 어느 언론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새 천년 첫 날 백두산에서 崔正岩.金泰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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