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아흔아홉칸 집, 사랑방, 덕수궁 돌담길…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있어 왠지 정겹고 익숙하다.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들이어서 그럴까.
손님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흔히 "안방으로 드시지요"라고 말한다. 귀하고 중요한 사람일수록 더 깊은 밀실로 안내하고 또 그곳으로 찾아들려 하는 것이 우리네의 습성이기도 하다. 첩첩이 담장을 치고 방을 만들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자랑거리든 치부거리든 겉으로 드러내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을 우리 민족의 밀실문화, 토담문화적 특성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서양사회의 민주주의 토양으로서 광장과 거실문화를 거론한다. 광장과 거실이야말로 열린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토론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토론의 결과가 곧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와 서구사람들의 차이는 선악(善惡)의 문제도 호오(好惡)의 문제도 아닌 그저 문화적인 차이일 뿐이긴 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러한 문화의 특질이 우리에게 끼치는 해악이 실로 작지않음을 새겨본다.
혈연과 지연에 따라 기업이나 정부의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입시철만 되면 무더기로 채점교수들이 구속되고, 보스의 야합으로 선거구와 공천이 이루어지는 행태 등 우리 사회 부정비리의 원죄가 바로 밀실·토담문화적 습성이라면 틀린 말일까.얼마전부터 대구 시내에 작지만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상감영공원의 담장이 없어지더니 국채보상기념공원이 트인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경북대 의대의 담도 허물어졌다. 주변 모습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공공기관이나 각급학교 또한 담장을 허문다고 하니 모처럼 관이 하는 일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같은 대구시의 참신한 시도는 우리네 밀실문화, 토담문화를 광장문화, 열린 문화로 변화시키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겉모습이 변하지 않는데 속이 변하는 경우가 없고, 속이 변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 없으므로….
권오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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