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데스크-새 세기의 시인들에게

'잠수함의 토끼'로 비유돼온 시인들이 '시가 죽어간다'는 이 시대에 어떤 생각에 불을 지피며 새길 트기를 하고 있을까. 세상이 빠르게 달라지는 디지털의 물결 속에서 과연 어떻게 대응하며, 새 세기에도 세상의 풍향계와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詩의 이슈 '생명' '성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과 개인용 컴퓨터로 대표되는 문명화와 기술 사유화의 시대, 자본주의로 수렴되는 균등한 경제 체제의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늘의 상황은 계속 위축돼온 시단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각종 문예지들은 이 문제에 착안, 특집을 마련하는 등 무성한 담론들도 낳고 있지만, 그 명암은 종잡을 수 없이 엇갈리고 있다. 21세기 시의 가장 뚜렷한 이슈로 '생명'과 '성찰'이 떠올려지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앞으로 우리 시의 두 날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아직은 '안개 속'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놀랍고 새로운 속도의 패러다임으로 디지털화돼 문학의 기능은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가 하면, 앞으로는 시가 그 무엇을 진단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수동성의 위치에서 고유의 장르 자체마저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적인 관측도 있다.

문학이 고유한 언어를 영상언어나 저널리즘적인 언어에 그 빛나는 자리를 물려 준 것이 '새로운 밀레니엄적 운명'이라고 내다본 한 문학평론가는 "서구적인 현대성의 사유 속에서 지워져 가는 것, 잃어버린 것, 이탈해 온 것을 더듬고 우리를 저 고대 원형의 거울 속에 비춰보는 말로 시의 '새로운 삶'을 다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시는 점점 소외의 길을 걸어

실제 시인들도 세기말을 거치면서 움츠릴대로 움츠려 방향감각이 흐릿해진 느낌마저 없지 않다. 시인의 수는 계속 크게 늘어나도 정작 시는 점점 소외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때문에 시는 이제 시인과 시문학도들만의 '폐쇄회로'에 갇히는 현상을 면치 못하며, 이같은 시의 장르론적 운명이 시인들을 더욱 작아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멀리 바라보면 지금 인류는 오히려 시를 요청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금은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이라는 관측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한다. 한 시인은 이어 새 세기를 '인식론적 도약이 필요한 시대'로 보고, "모든 도약은 시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인이 그 상상력을 인류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한 문학계간지도 이번호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질주하는 속도의 노도에 휩쓸려 가혹해진 운명들을 위무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무수한 타자들의 영혼을 감싸안으려는 '느린' '비경쟁적' '차선적' 상상력의 바탕 위에서 시의 새로운 꿈은 가능해진다는 전망이 그것이다.

그렇다. 한 문학평론가의 지적처럼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인들의 혜안과 정진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시의 또 다른 길을 새롭게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언제나 '잠수함 속의 토끼'

시가 박물관으로 가지 않고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인들의 비장한 각오가 선행되고 담보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집단적인 구조와의 대결, 도도한 정보화 물결과 획일화의 파도에 대한 이면 들춰내기, 진정하고 새로운 삶의 본보기 모색, 메말라가는 정서의 새로운 펼침 등이 그 무거운 짐들이며, 열쇠도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아가 시대를 과감하게 거슬러 오르면서 '타락한 언어'를 '신성한 언어'로 바꾸는 언어 연금술과 인문주의적 상상력을 견지하는 슬기가 따라야만 한다.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언제나 자신이 놓인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인간성 회복과 그 고양, 억압 체계에 대한 저항, 자유의 존귀함 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부드러우면서도 완강한 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