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C여성시대 과제와 전망(2)

대졸 여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사는 모자세대 A(36)씨. IMF가 터지고 순식간에 실직 여성가장이 된 김씨는 지난해 국민실업기금에서 나눠주는 쌀쿠폰을 받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다가 동사무소 직원의 이유없는(?) 구박을 당해야했다.

"모자 세대 증명을 떼달라니, 무조건 기다리라는 거예요. 이유없이 사람을 기다리게 할때 느껴야했던 비굴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김씨의 사연을 접한 한 여성단체가 동사무소로 항의 전화를 내고서 A씨는 모자세대 증명서를 떼는데 성공했다.

갑자기 남편이 공사판에서 숨진 또다른 30대 주부 B씨. 남편을 떠나 보내고, 졸지에 여성가장이 되었지만 사회를 아는 것도 아니고, 기술을 갖지도 못했던 터라 하루종일 울면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런 B씨에게 대학때 논문을 지도했던 교수(계명대 생활과학부 박혜인교수)의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됐다.

"꼭 틀어박혀서 울지만 말고, 실직 여성가장을 위한 이야기모임에 나와보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는게 어떠냐"는 박교수의 권유에 마지못해서 발걸음을 뗀 실직 여성가장들의 '들풀 이야기방'(방지기 강명희, 053-425-7701)은 B씨에게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었다.

비슷한 처지에 나이도 비슷한 A씨와 B씨는 서로 흉허물을 털어놓는 친구가 됐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힘들게 세상을 이겨나간 여성들의 생활담과 그 와중에서 겪었던 속내를 들여다보고나니 "나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세상을 살아갈만한 아무것도 없는 극한 상황에서 비슷한 입장의 여성을 만나서 '한맺힌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현재 회원이 35명에 이르는 들풀 이야기방의 탄생은 21세기 여성시대를 맞아 신 희망을 심어주는 여성운동의 새로운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임을 만든 견인차는 바로 평범한 주부들이 환경과 교육을 걱정하며 모인 '함께하는 주부모임'(공동대표 우정애·정경숙)

이곳 회원들은 남편과 자녀들의 입신출세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가족상을 깨고, 쓰레기 줄이기와 같은 생활속의 환경운동을 몸소 실천하며, 삶의 한부분을 쪼개어 이웃과 사회를 보듬는 순수한 활동을 편지 약 10년만에 나보다 더 어려운 주부들을 위해 적극적인 손길을 내미는 실천단체로 우뚝 섰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주부들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바로미터로 작용한지 이미 오래. 알자 듣자 보자 배우자를 4가지 생활지침으로 정하고 있는 일본여성들은 소모임을 통해서 "요즘 자녀들에게 왜 비만이 많이 나올까" "일나가는 이웃집 아이를 내가 돌보자" "홀로 사는 노인을 찾아서 말벗이 되자""학교 폭력을 내손으로 막자"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봉사와 친목 중심의 단체 활동에서 탈피했다.

함께하는 주부모임 정경숙 공동대표는 "주부들이 바로 눈뜨면 급변하는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아줌마들이 나와 가족의 안락함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껍질을 벗고, 불우한 여성과 자녀들을 위한 사업에 동참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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