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그러진 성문화-원조교제

원조교제, 보도방, 컴섹(컴퓨터섹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하던 새로운 성(性)문화가 지역사회에도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느새 쾌락주의와 성의 상품화에 깊이 젖어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10대 매매춘을 뿌리뽑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지금, 몇차례의 시리즈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성문화를 진단해보고 해결책 을 제시해본다. 편집자

"아저씨, 9시에 쭛쭛동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요"

경찰이 10대 매매춘과 전쟁을 선포한지 4일이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모 PC방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위험한 거래'가 시작됐다.

"고2년생인데 아저씨 얼마 줄래요?" 모델 지망생이라는 한 여고생이 채팅을 통해 노골적으로 '원조 교제' 의사를 밝혔다.

"20만원"이라는 대답과 함께 30대 아저씨와 약속을 정한 이 여고생은 조금뒤 자리를 떴다.

과연 밤거리의 10대는 사라지고 있을까.

본사 기획취재팀은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원조 교제'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청소년을 지키겠다는 어른들의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이 자갈마당 같은 윤락가를 지키고 있는 그시간에 인터넷 채팅과 전화 사서함 등을 통한 10대 매춘은 거림낌없이 성행하고 있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ㅅ인터넷 사이트.

1만여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이곳 일대일 대화방의 절반 이상은 '음란한 목적'을 가진 대화방이다. 어른들이 돈으로 10대를 유혹하고 있는 창구인 셈이다.

취재팀은 사흘동안 원조 교제를 원한다는 5명의 지역 청소년과 접촉할수 있었다. 지난 가을 학교가 다니기 싫어 가출했다는 김모양(18)은 "노래방에 나가거나 원조교제로 수월하게 생활비를 번다"며 "친한 친구 두명도 아저씨들과 수시로 만나 용돈을 얻어쓴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이를 통해 받는 돈은 보통 10만원에서 20만원선.

여상 졸업반이라는 박모양은 재미로 원조 교제를 시작한 경우.

"지난해 봄 채팅을 통해 만난 20대 중반 아저씨랑 술을 마시다 교제를 했다"며 "그후로 한번씩 돈을 받고 아저씨와 만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양은 "말은 안해도 같은반 친구중 서너명 이상이 원조 교제를 하고 있는 눈치"라고 했다. 실제 남구 봉덕동이나 대학가 주변 일부 pc방에는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 심야 시간까지 '채팅'에 몰두하는 여고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른들은 끊임없이 돈으로 미끼를 던지고, 일부 10대들은 죄의식없이 이를 덥석 받아들이는 악순환….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풍조에 젖어든 우리 사회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직장인 최모(40·경북 칠곡군)씨는 지난달말 지역에서 개설된 채팅사이트에 장난삼아 '원조교제 원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쏟아지는 전화에 고생을 했다. 그는 "여중 1학년부터 며칠동안 무려 30통이 넘는 10대들의 전화가 걸려왔다"며 요즘 아이들의 대담성에 새삼 놀랐다고 했다.

대구YMCA 부설 가출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의 경우 상당수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윤락에 빠진다"며 "예전엔 주로 보도방이나 700 사서함을 통했지만 지난해 가을부턴 채팅을 통해 원조 교제를 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또 그는 "지난해 이곳에 왔던 아이들중 10명 이상이 원조 교제를 한 경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흔히 700번으로 시작되는 전화 음성 사서함에도 유혹들로 가득차 있다.'용돈이 필요하다'는 여고생의 목소리부터 '원하는 건 얼마든지 해줄수 있다'는 40대 남성의 음성까지. 곳곳에 청소년을 유혹하는 지뢰밭이 널려 있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건찬(36)사무국장은 "단순히 눈에 띄는 윤락가를 단속한다고 해서 은밀한 원조교제 따위를 뿌리뽑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풍토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못하거나 거리를 떠도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10대 매춘은 근절되기 어렵다"고 했다.

朴炳宣·金辰洙·李宰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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