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경산시 폐 코발트광산의 정치범 집단학살에 대한 매일신문 보도(14일자 1·2·31면)와 관련, 본사엔 14일 하루 종일 피학살자 유족 및 주민들의 제보와 증언이 잇따랐다.
권대성(56·경북도 영천시)씨는 "대구시 칠성동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부친이 좌익활동가인 친구에게 용돈을 줬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됐으며 한국전쟁 직후 군인 3명의 방문을 받은 뒤 행방불명됐다"고 증언했다.
당시 경북 김천에 살던 박득렬(84)씨는 "숙부는 좌익도 아니었는데 보도연맹에 강제 가입돼 김천시 지레골짜기에서 처형됐다"며 "이후 일가 친척들은 '빨갱이 가족 '이라는 주변의 매도를 못이겨 대구로 이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갑석(66·경북 칠곡군 지천면)씨는 "신동재 꼭대기와 현재 돌고개로 불리는 중앙고속도로 칠곡 진입로 부근에 당시 '사형장 '으로 불리던 처형장이 있었으며 수시로 총소리가 들렸다"고 당시의 참상을 알렸다.
지난 1960년 당시 대구·경북지역에서 시신수습 및 진상규명 활동을 했던 피학살자유족회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김현구(61)씨는 "당시 대구시 상인동 어느 과수원에서 손발이 전선으로 묶인채 총살된 시신을 다수 발굴했으며 그중엔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이 서울대·고대 등의 대학 배지를 달고 숨져 있기도 해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고 회고했다.
한편 본사 취재팀은 유족들의 제보에 따라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은 대구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주장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는 1960년 당시 발간된 대구지역 모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취재했다.
'양심선언 ' 형식으로 작성된 이 기사에서 대구지역의 한 경찰관은 자신을 포함한 경북경찰국 특경대원 20여명이 '1950년 7월초 당시 대구시 삼덕동에 있던 대구형무소 광장에서 남녀 재소자 200여명을 가창골 광산(현 가창면 상원리)으로 끌고가 모두 총살했다 '고 고백했다.
유족 김현구씨는 "지금까지는 증인들과 조사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계속 소멸되고 있다"며 "정부당국과 시민단체가 함께 진상규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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