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권기호(경북대 인문대 학장·시인)
△김권구(국립 대구박물관장)
△전경옥(매일신문 문화부장·사회)
▶사회우선 '21세기와 문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문화의 세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과연 문화의 세기는 올 것인가. 컴퓨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문화예술이 진정한 정신적 대안으로 자리잡을까.
▶권정보화시대, 디지털시대, 컴퓨터시대 등의 용어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부쩍 많아졌다. 이런 첨단 수단을 통해 문화예술 시대의 도래 및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또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각 분야가 혼재된 새로운 장르가 나타나리라는 기대감에서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 같다. 그러나 대중에 영합하는 문화가 확대됨으로써 삶의 진지성,깊은 사색이 깃든 작품활동이 줄어든다는 의미에서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의문이다.
▶김현대는 문화정보의 고속도로가 놓여진 시대다.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문화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상상력과 판단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의 세기를 얘기하는 이유는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디지틀·인터넷 등의 등장에 의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은 우리 삶의 질과 내용을 의미있게 해주는 자극원이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듯 문화적 생활이 삶의 질향상에 중요하기 때문에 문화의 세기는 반드시 올 것이다.
▶사회대구·경북지역의 문화 현실에 대해 위기감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날 한강 이남 최고의 문화를 자랑했던 이 지역이 이젠 자칫 문화 삼류도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향토의 문화 인프라 현실부터 살펴보자.
▶권시(詩)분야를 예로 들면 과거엔 시인 수만 해도 서울 다음이었고 주목받는 작가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지역의 경제력과도 관련이 크지만 문화행정 집행자들, 시민 인식과도 결부돼 있다. 각 구마다 문예회관이 들어서고 시설은 손색없지만 공연, 전시 등의 내용은 아직 부실하다.
지역 기업체 등의 문화 지원도 매우 인색하다. 기껏 ~문학상, ~예술상해서 1년에 수백만원 투자하는 걸로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행정당국도 문화를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드 웨어는 어느 정도 구축돼 있는데 그것을 움직일 소프트 웨어는 미비하다.
▶김문화에 대한 투자는 일회성 소비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투자이다. 대구의 미래는 문화에 달려 있다.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또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를 육성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미술관, 공연장 등 장르별 인프라도 물론 확충해야 한다.
대구시 정도 크기의 도시라면 박물관이 최소한 10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 기존의 문화관련 시설들을 활성화시켜 많은 볼거리들을 만들어내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국채보상기념공원에 각 대학의 졸업작품전을 열게 한다거나 동화사, 향교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그곳에서 선보여 도심 속의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 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는 단순히 지방도시가 아니라 개성을 지닌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사회부산영화제, 광주비엔날레, 부천 환타스틱영화제, 춘천 인형극제 등 최근 타 지방도시들은 독자적인 지역 문화조성에 매우 적극적이다. 호남지역의 문화바람도 거세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적 정체성을 살리면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 창출의 방안은?
▶김대구·경북은 문화적,자연적, 인적 자원면에서 어느 지방보다 잠재력이 크다. 대구만 해도 250만 인구 중 분야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21세기는 환경, 역사, 문화 등의 테마관광이 큰 산업자원이다. 그 하나하나를 잘 보존, 관리해서 문화자원화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경북은 유교권 개발, 역사문화 보존으로 문화정책의 방향을 잡았고, 대구는 품위있는 문화도시를 시정방향으로 삼고 있다. 타지역을 모방하기 보다는 지역 특색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틀과 마당을 많이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권광주비엔날레는 광주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추진되고 있다. 광주시민의 이해 위에서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이 용인되고 있다는 말이다. 대구시민들은 과연 문화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이해해 줄까.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는 프리스 라이너라는 유명 지휘자를 초빙해 세계적 교향악단이 됐다.
국내 한 도시의 교향악단이 해체 위기에 놓였다. 그 예산을 실업자를 위해 쓰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시민들은 교향악단을 유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지역 특색위에 보편성을 지닌 문화창출을 하려면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장기투자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지역의 문화예술분야 인재들이 서울로 떠나가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 활동무대가 너무 좁다는 불만과 뒤처질까 하는 우려감 때문이다. 문화예술 인재 육성을 위한 대책이 시급한데?
▶권재능있는 사람들은 매스컴의 시선을 받는다 싶으면 다 서울로 가버린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평생을 뉴 잉글랜드의 시골에서 살았지만 세계적 시인이 됐다. 우리는 작가가 출판사나 매스컴을 찾아나서지만 앞으로는 그들이 작가를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의 보편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리라 기대한다.
지역 대학들도 예술분야의 무시험 전형을 대폭 늘려야한다고 생각한다. 뜻있는 교육가나 기업가들이 재능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돌아와서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김젊은 인재들을 흡인하는 제도적인 유인책,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야외공연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서 젊은 인재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등이다. 또한 문화예술인 스스로도 프로의식을 갖고 끊임없는 자기계발노력을 한다면 지방거주 자체가 큰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사회생활 속에 문화예술의 향기를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즐길 수 있는 수요층이 두꺼워야 한다. 문화예술인구 저변확대의 방안은?
▶김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주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들을 문화의 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밤에 빈 강의실을 활용, 시인이 이끄는 시 창작교실 개설 등 문화 각 분야의 오픈 코스로 만드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지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동참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문화인구 저변확대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작은 도심공원들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직접 지역민속으로 찾아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대구박물관의 경우 사이버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8개월만에 4만2천여명이 접속하는 등 반응이 좋다. 지역민들도 문화를 즐기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빌 게이츠가 그렇게 짧은 시간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21세기엔 문화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경제도 살릴 수 있다.
▶권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들이 극단이나 실내악단 등을 후원, 마을이나 아파트단지를 순회하며 대중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갖게 해보면 어떨까. 본격적인 순수예술작품보다는 대중성을 갖춘 작품을 위주로 하여 가설무대에서나마 공연하게 하는, 이런 소극장 운동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펴면 상당한 저변확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우리지역은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寶庫)이다. 21세기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이 문화 유산을 어떻게 보존·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까?
▶김밀라노가 지금의 세계적 패션도시 밀라노가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로마문명의 문화적 토대와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분위기가 밑받침이 돼서 가능하다. 우리도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한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지방인간문화재 제도를 유지하면서 자주 시민들 속으로 찾아가는 기회를 갖게 해야 할 것이다.
자치단체들은 유적·사적들은 문화유적 전산화, 자료 최신화작업 등을 하는 한편 문화재 전문가를 둬 건축, 건설, 개발 인허가 심의과정에서 문화재 유무를 점검하고 보존조치를 취한 다음 허가를 내줘서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거석문화로 유명하다. 옛날엔 대구에도 신천주변에 지석묘가 많았다. 묘표시 등 매우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 보존은 물론 후세를 위해 우리 스스로 문화재를 만들어 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권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경주의 불교문화, 안동의 유교문화, 동해안의 무속문화 등 독특한 정신적인 문화가 우리 지역엔 많다. 서구의 막힌 숨구멍을 뚫어줄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
윤이상 선생이 오페라 '심청' 작곡 때 궁중 아악적인 요소에 도교적인 것을 결부시켰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우리의 정신적인 요소들을 현대화해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존 스타인벡이 '불만의 겨울'을 쓸 때 당시 미국 남부의 정신적 특성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켜서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됐다. 서구 문화의 한계를 뚫어줄 수 있는 예술작품의 광맥들이 우리 지역에 산재해 있다.
▶사회근래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들 '문화'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문화 관련 예산은 턱없이 적다. 대구·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그나마 불요불급하다는 이유로 깎이기 일쑤이고, 지원대상도 연례적, 전시효과적 행사들에 치우쳐 있다. 지역 문화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각적인 지원대책이 시급한데?.
▶권근본적으로 문화행정 관계자들의 인식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흔히 선거용으로, 또는 이미지관리 차원에서 문화를 내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다. 문화예술 자체를 아프도록 좋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서구의 행정가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 기본 바탕이 돼 있다. 진정으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신명나게 창작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
▶김문화분야에 예산과 투자를 늘리는 것은 물론 절대적 과제이다.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이제는 과감하게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늘 부족하다. 좀 피상적이긴 하지만 지역민들은 단체장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줌으로써 바람직한 문화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돕자. 벌레는 귀찮은 존재지만 벌레가 없는 나무에는 새가 날아오지 않는다. 문화예산 증액을 요구하면서 우리도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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