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金洪信의 '판소리' 진술

민족 최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춘향전의 하이라이트는 남원부사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걸객으로 끼여든 이몽룡의 '어사출또' 장면이 아닐까. ▲이몽룡이 남루한 모습으로 '금잔에 가득한 좋은 술은 천사람 피를 짜낸 것이요,상다리가 휘게 차린 맛있는 음식은 만명의 기름'(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이라 읊는 가운데 '어사출또' 하는 모습은 억눌린 이 백성에겐 정말 신나는 장면이었다. '너희들이 지금 먹고 마시는 술과 안주는 백성들의 피와기름'이라며 낭자한 잔치판에 들이 닥치는 역졸들의 육모방망이.... 이 얼마나 당당한 탐관오리에 대한 논고며 극적 반전(反轉)인가. ▲김홍신(金洪信.한나라당) 의원이 21일 재판정에서 판소리 한마당을 읊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공업용 미싱발언'으로 기소된 자신의결심공판에서 판소리로 최후 진술을 했다. 김 의원은 이날 자작(自作)의 판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소명하겠다고 했지만 재판부가 소리는 허용할 수 없다고 하자 104장 분량의 원고를 읽어내려 가다 끝내는 4.4조의 운율을 타며 나지막한 '판소리조'로 불렀던 것이다. ▲그는 자작의 판소리에서 '...해학 풍자 가래로 막고/트인 입 찢어서 막고/바른 말은 갓난애 손목 비틀듯 하고...'라며 언로가 막힌 것을 풍자했고 '중소기업 부도 지옥/노동자들 해고지옥/...정치판은 부패 지옥/지도자는 정치 지옥'이라 개탄했다. 어찌보면그는 이처럼 소설가 출신답게 예술적(?) 시각에서 판소리를 통해 사회와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을 논고하고 꾸짖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또 어느일면 우리는 김 의원의 판소리 장면에서 이몽룡이 시를 읊어 탐관오리를 꾸짖은 춘향전 구절을 생각하게도 되는 것이다. ▲춘향전의 배경과 김 의원의판소리는 그 배경이 물론 판이하게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이처럼 꾸짖어서야 어찌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김 의원의 물음에 대해 우리는 새삼 숙고해야 할 것만 같다. 더구나 대통령의 "현실 상황이 바뀌면 법을 안 지킬 수도 있다"는 막말(?)에 나라안이 술렁이고 있는 판에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를 두고 1년6월을 구형한 검찰을 국민들은 어찌 받아들일는지... 궁금하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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